'컬처프로젝트 07 KEANE/전문가 칼럼' (5건)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7 KEANE 공연은 청명한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KEANE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죠. 보컬인 톰 채플린의 아름다운 미성과 멤버들의 파워풀한 연주가 한데 어우러지며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였던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7 KEANE의 현장을 김두완님의 글로 다시 한 번 되돌아봅니다.

 

 


 

 

 

 

그동안 그룹 킨(KEANE)은 네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지만 주로 멜로디와 건반에 중심을 두고 감성의 음악을 펼쳐 왔다. 그러다 보니 킨의 공연을 기대하는 음악 팬들, 특히 록음악 팬들은 비교적 적은 것이 사실이다. 밴드의 공연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힘, 또는 박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킨의 공연을 단 한 번, 아니 단 한 곡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선입견이 결국 덧없는 기우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지난 2009년 ETP 페스티벌에 이어 약 3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가진 킨은 여전히 뜨거운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9월 24일 저녁,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공연장으로 모여들었다. 오늘이 월요일인가, 싶을 정도로 관객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추석 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기적 조건, 그리고 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가 모두의 마음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공연 시작 시각인 오후 8시가 가까워지면서 공연장의 빈자리는 점차 사라졌고, 8시를 지나면서 만원에 가까운 인파가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8시에서 약 7분이 지났을 무렵, 장내가 어두워지고 관객들의 함성이 곳곳에서 터지더니 곧 네 명의 남자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톰 채플린(Tom Chaplin. 보컬), 팀 라이스 옥슬리(Tim Rice-Oxley. 건반), 리처드 휴즈(Richard Hughes. 드럼), 그리고 2011년부터 정식 멤버가 된 제시 퀸(Jesse Quin. 베이스)이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킨의 첫 번째 단독 내한공연은 지난 5월에 나온 네 번째 앨범 Strangeland의 첫 곡 ‘You Are Young’으로 포문을 열었다. 톰 채플린의 절창은 공연장에 열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밴드의 연주는 관객의 흥분을 부추겼다. ‘You Are Young’의 미드 템포를 이어받은 ‘Bend And Break’의 업 템포는 장내의 열기를 더 뜨겁게 달구었다. 관객들의 흥은 희망찬 분위기를 뽐낸 ‘Day Will Come’으로 본 궤도에 들어섰다.

 

 

 

 

이후 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을 두루 오가며 관객들의 감성을 쥐락펴락했다. ‘Spiraling’처럼 신나는 노래가 관객의 흥을 돋우는가 하면, ‘We Might As Well Be Strangers’처럼 차분한 곡은 장내의 환기를 유도했다. 신보 수록곡인 ‘Strangeland’와 ‘On The Road’의 자연스러운 이음새는 킨의 편곡 센스를 엿볼 수 있게 했다. 'On The Road'의 경우 싱글커트곡은 아니지만 곡이 가진 특유의 활기로 관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공연은 신보 투어의 일환으로 진행되어 히트곡과 신보 수록곡이 주를 이루었다. 데뷔 앨범 Hopes And Fears와 신보 Strangeland가 세트리스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두 앨범 모두 멜로디와 서정성에 중점을 둔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친숙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관객들의 호응도 여기에 부응했다.

 

사실 무대 위는 네 사람과 그들의 악기가 전부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단출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의 감성적인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원색을 이용한 조명과 사이키 조명이 적시적소에 쓰이면서 무대 위의 여백은 감각적으로 채색되었고, 무대 뒤편의 우측 상단에 위치한 ‘STRANGELAND’라는 조명 글씨는 그들의 신보 수록곡이 연주될 때만 빛을 발해 신선한 재미를 만들었다. 그만큼 킨은 자신들의 음악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데뷔앨범 Hopes And Fears가 낳은 히트곡들이 장식했다. 세트리스트 중반에 등장한 ‘Everybody’s Changing’은 하이라이트의 시작이었다. 한국의 대중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Everybody’s Changing’은 과거의 어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한국 대중과 상당히 가까워진 곡이다. 2009년 ETP 페스티벌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을 때, 해당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구현한 ‘대형 강강수월래’는 지금도 많은 음악팬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에 속한다. 이번에는 장내의 관객 밀도가 높아 그러한 퍼포먼스는 불가능했지만, 종이비행기가 또 하나의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Everybody’s Changing’의 순서에서 일부 관객들이 준비한 작은 종이비행기들이 허공을 갈랐던 것이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바라보며 노래를 함께 부르는 관객들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장내의 뜨거운 분위기가 극에 달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광경에 킨 멤버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고, 곡이 끝난 후 톰 채플린은 무대 위에 올라온 종이비행기들을 다시 관객들에게 날려보내기도 했다. 한 마디로 ‘Everybody’s Changing’은 뮤지션과 관객이 음악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를 최고라 추켜세울 수 있는 기적적인 시간이었다.

 

 

 

 

이와 함께 데뷔앨범이 낳은 또 다른 히트곡 ‘Somewhere Only We Know’와 ‘Bedshaped’는 관객들의 합창으로 진정한 장관을 연출했다. ‘Somewhere Only We Know’의 경우 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곡답게 폭발적인 싱어롱이 이어졌다. 결국 이 곡이 끝나자마자 밴드 멤버 모두,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느라 의자에 앉아 있던 팀 라이스 옥슬리와 리처드 휴즈까지 기립하여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에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이러한 장면은 메인 세트리스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Bedshaped’에서도 재현되었다. 데뷔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슬로우 템포의 록 발라드인 이 곡은 관객의 열띤 합창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기기 충분했다. 공연의 스무 번째 곡 ‘Bedshaped’를 마무리한 킨은 이 세상의 모든 공연이 그러하듯 뜨거운 인사와 함께 무대를 떠났다. 물론 킨이 무대를 비움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앙코르 요청이 쏟아져 나왔고, 여기에 킨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앙코르 순서는 정중동의 흐름을 따랐다. 


Strangeland에 수록된 발라드 넘버 ‘Sea Fog’가 앙코르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톰 채플린의 미성과 팀 라이스 옥슬리의 건반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제시 퀸의 화음이 첨가되면서 흥분했던 관객들은 차분해짐과 동시에 또 다른 기대감을 품었다. ‘Sea Fog’에 이어진 곡은 ‘Sea Fog’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업 템포 트랙 ‘Sovereign Light Cafe’였다. 그리고 ‘Sovereign Light Cafe’가 지닌 활기찬 기운은 두 번째 앨범 Under The Iron Sea가 낳은 히트곡 ‘Crystal Ball’로 이어졌다. ‘Sovereign Light Cafe’와 흡사한 분위기를 뽐냈지만 ‘Sovereign Light Cafe’보다 인지도 면에서 월등히 앞선 덕분에, ‘Crystal Ball’은 엄청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세 곡을 끝낸 멤버들은 관객들에게 다시 안녕을 고했지만, 앙코르 요청은 또 다시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 앙코르 요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관객들의 함성은 어마어마했다. 결국 네 명의 주인공은 두 번째 앙코르 무대를 진행했고, 결국 그룹 퀸(Queen)의 ‘Under Pressure’가 이번 내한공연의 ‘진짜’ 마지막 곡이 되었다. 은 이 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백하게 재현해 내며 관객과 온 힘을 다해 호흡했다. 이 순서, 이 순간만큼은 관객 사이를 가로지른 지정석과 스탠딩석의 구분도 무의미했다.

 

 

 

 

총 24곡,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공연은 의 농익은 라이브 실력을 여실히 증명하는 자리였다. 킨의 정식 멤버가 되기 전에 이미 투어 멤버로 활약했던 제시 퀸은 마치 창단 멤버처럼 세 사람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킨의 연주력과 관객 흡인력은 별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특히 톰 채플린의 무대 장악력은 가히 최고라 할만했다. 혼자 무대 위에 서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Your Eyes Open’을 노래하는 모습은 사랑스러웠고, 허공에 오른팔을 내던지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무대 위를 휘저으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음정을 뽑아내는 그의 모습은 역시 프로다웠다.

 

지금까지 이 발표한 모든 스튜디오 앨범은 자국인 영국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것은 물론 진기록이고 아무나 세울 수 없는 기록이다. 대중음악의 미덕인 친근한 멜로디와 탄탄한 라이브 실력, 이 두 가지를 킨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킨이 전자만 갖추고 후자를 놓쳤다면, 영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은 그들을 쉽게 외면했을 것이다. 9월 24일 밤, 한국의 음악 팬들은 그룹 킨의 모든 역량을 확인하며 네 사람을 다시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Writer. 김두완

 

대중음악 웹진 '이즘', 팝 전문 월간지 '핫트랙스'에 글을 썼고, 쓰고 있다.

음악과 함께하는, 정년 없는 인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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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의 개폐막식을 화려하게 수놓은 것은 역시 브리티시록이었습니다. 그만큼 영국의 색채가 가장 뚜렷하게 묻어나는 것이 음악이라는 뜻이겠죠. 그동안 슈퍼시리즈 블로그에서는 브리티시록의 전설인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와 함께 브리티시록의 계보 및 흐름에 대해 소개해왔습니다. 오늘은 음반/공연 기획자이자 음악평론가이신 김영혁님의 글로 브리티시록의 현재를 대변하는 아티스트들을 만나봅니다.

 


 

2011년 그래미상 신인상 후보에는 영국의 포크 록 밴드 멈포드 앤 선즈(Mumford & Sons)와 플로렌스 앤 더 머쉰(Florence & The Machine) 두 팀이 후보로 올랐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와 아델(Adele), 두 명의 영국 출신 가수가 그래미 신인상을 연속으로 받았지만, 영국의 밴드 두 팀이 동시에 그래미 신인상 후보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비록 두 팀 다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두 팀은 빌보드 앨범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플래티넘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인 뮤즈(Muse)가 데뷔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미국 시장에서 앨범 판매로 플래티넘(100만장 이상 판매)을 기록하고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미국 시장에 안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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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을 침공하던 시절과는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영국 밴드들은 오늘날에도 전세계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밴드들은 요 근래 음악을 열심히 듣지 않는 이들에겐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이름이지만 가장 최근 전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데 성공한 영국의 신진 밴드들이다. 이 새로운 세대들은 동시대에 활약하고 있는 선배들과는 좀 다른 음악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최근 음악계에 뚜렷한 주류를 발견하기 힘든 것처럼 다양한 음악들이 영국으로부터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데뷔했지만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선배들’의 대표적인 예로는 라디오헤드(Radiohead), 콜드플레이(Coldplay), 뮤즈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데뷔 시절부터 'Creep'이라는 전세계적인 히트곡을 만들어 낸 라디오헤드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오늘날 음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팬들이 직접 가격을 정하게 한 다음 신곡을 다운로드 받게 하거나,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새로운 음악을 가장 먼저 접하게 하고 한정판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독립적으로 음악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앞서 나가는 행보를 보이면서 다운로드가 중심이 된 새로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주류 음악계 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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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플레이는 지난 10년간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국 밴드 중 하나다. 8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소위 공룡급 밴드가 된 아일랜드 밴드 U2의 사운드를 일부분 벤치마킹한 콜드플레이는 심지어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즈, 혹은 롤링 스톤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상을 2004년에 수상하면서 그들이 영국 외에서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래미는 미국인들의 시상식이기 때문에 영국 밴드들에게 상을 주는데 있어 늘 인색했었고, 과거 U2가 주요 부분의 상을 수상하면서 환대를 받은 것은 그래미의 큰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들의 초중반기 앨범에서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큰 인기를 얻은 트래비스(Travis)와 스타일상 유사점도 많이 발견되는데, 이 스코틀랜드 밴드의 영국 바깥에서의 인기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콜드플레이의 성공은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영국 이외의 그 어느 지역에서든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설 수 있고, 또한 대형 아레나나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밴드로는 뮤즈가 있을 것이다. 매튜 벨라미의 울부짖는 듯한 특유의 보컬 스타일 때문에 데뷔 시절 라디오헤드를 따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퀸(Queen)을 연상시키는 웅장하고 고전적인 사운드, 그리고 영국 록이 가장 번성했던 70년대 하드록 밴드들이 갖고 있던 공격성이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 추구했던 구조나 드라마틱함에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광범위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밴드의 인지도나 공연 관객 동원력은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데, 2010년 캘리포니아 뿐 아니라 북미 지역 최대의 페스티벌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코첼라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공연을 한 것은 그간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북미 공연 시장에서의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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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데뷔한 이 밴드들이 여전히 선두에 서 있는 가운데, 2000년대 이후에 데뷔한 밴드들도 그 음악적 영향력을 증가시켜 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영국 외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카사비안(Kasabian)처럼 북미 시장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밴드들도 있고, 악틱 몽키스(Artic Monkeys)처럼 영국의 거의 모든 매체들이 후원에 가까운 칭찬 글들을 쏟아 냈지만 영국 안과 바깥의 온도 차가 존재하는 밴드도 있다. 단순히 판매량에 기반을 둔 시장지배력만을 생각한다면 영국의 록밴드들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다소 줄어 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멈포드 앤 선즈와 플로렌스 앤 더 머쉰 같은 신진 밴드들이 의외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전세계 시장에서 영국 록이 차지하고 있는 지분이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한 판단이 될 것이다.

 

런던 올림픽의 개폐회식에서 볼 수 있었듯, 영국의 대중 음악, 특히 록음악은 찬란히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고 그 명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밴드보다 (여성) 솔로 가수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였던 2000년대지만,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페스티벌과 공연 시장을 바탕으로 새롭고 재능 있는 록밴드들이 끊임 없이 등장한다. 이들의 스타일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영국의 대형 음악 시상식인 브릿 어워즈(Brit Awards)에서 "최우수 앨범상"을 수상한 밴드들 - 콜드플레이, 다크니스(The Darkness), (Keane), 악틱 몽키스, 플로렌스 앤 더 머쉰, 멈포드 앤 선즈 등이나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머큐리 상 (Mercury Prize)을 수상한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엘보우(Elbow), 더 엑스엑스(The XX) 등의 밴드들을 나열해 보면 이들 중 서로 유사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팀은 단 하나도 없다. 다크니스는 글램 록에 많은 영향을 받은 하드 록/헤비 메탈 밴드이며, 킨은 건반의 멜로디에 중점을 둔 일명 피아노 록을 선보인다. 


2004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부터 올해 발표한 네번째 앨범까지 연속으로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려 놓을 정도로 영국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은 브릿 어워즈 뿐 아니라 영국의 대표적인 음악 매체 큐 매거진이 수여하는 큐 어워즈에서 수차례 상을 수상할 정도로 영국 내에서는 확고한 입지를 다진 밴드이면서, 최근까지도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다. 4일 후면 9월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7 KEANE을 통해 첫번째 단독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최초의 내한은 페스티벌을 통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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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는 엑스엑스는 영국 록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조이 디비전(Joy Division)부터 최근 영국 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글라스베가스(Glasvegas) 등 수많은 밴드들을 연상시키는, 전자 음악과 드림 팝, 펑크 등이 공존하는 음악을 연주한다. 패션계에서도 각광 받는 리드 싱어 플로렌스 웰치가 주도하는 플로렌스 앤 더 머쉰은 케이트 부쉬를 연상케 하는 어둡고 고전적인 소울이나 포크 음악을 기반으로 한 록/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이며, 멈포드 앤 더 선즈는 컨트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블루글래스와 포크를 오가는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음악계에서 영향력을 점점 더 증대시켜 가고 있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이런 밴드들은 이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팬들을 간접적으로 만나고 있으며, 투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들과 대면하면서 충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예전보다 판매량이 줄기는 했지만 영국의 음악 잡지들, NME, MOJO, Q 등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점, BBC 같은 영향력 있는 전국 네트워크가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데 있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도 지속적인 영국 밴드들의 성공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점들이다. 늘 극성스러운 영국의 매체들은 재능 있는 새로운 밴드가 영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빠른 시간 안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데 콜드플레이, 뮤즈, 라디오헤드 등의 밴드 역시 초창기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쳤으며 카사비안, 프란츠 퍼디난드, 악틱 몽키스, 글라스베가스, 스노우 패트롤(Snow Patrol) 등의 밴드들 역시 이들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BBC가 투표를 통해 매년 선정하는 "Sound of...". 즉 올해의 신인을 예측하는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팅팅스(The Ting Tings), 백신스(The Vaccines), 폴스(The Foals) 등도 빠른 시간 안에 페스티벌에서 환영 받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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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팝이나 록음악을 브릿팝이라는 단어로 부르고 브리티시록이라는 단어로 하나의 장르처럼 통칭하지만, 최근 영국의 록음악의 행보는 더욱 세분화된 갈래길로 향해 있다. 음악 매체 안에서도, 혹은 페스티벌 안에서도 그렇다. 예컨대,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이는 뱃 포 래쉬스(Bat For Lashes), 핫 칩스(Hot Chips), 싸이키델릭 사운드로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장고 장고(Django Django), 댄스와 펑크가 동거하는 블록 파티(Bloc Party) 등이 공존한다. 점점 복잡해지는 오늘날 시대상에 걸맞는 이 역동적인 다양성이 여전히 '영국 록'을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Writer. 김영혁

 

회사원 자격으로 음반을 소개하는 일을 꽤 오랫동안 했다. 레코드를 좋아해서 레코드페어를 시작했고,

공연을 좋아해서 공연 기획을 시작했으며,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서 오래 다니던 회사를 관뒀으나

여전히 중심은 음악이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지만 유일한 저서는 부업인 까페 창업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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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오동오 2016.05.27 01:34 신고

    글 너무 못쓰네.. 마치 요즘의 장식으로 가득한 영국 음악처럼

 

브리티시록이 생소하게 느껴지시는 분들이라고 해도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이름이나 음악은 한 번씩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들의 수많은 곡들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희노애락을 선물하는데요.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중심에 섰던 비틀즈와 1960년대 젊은이의 열정을 대변했던 롤링 스톤즈. 전세계인들의 가슴을 뛰게한 전설적인 두 밴드,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자세한 이야기를 핫트랙스 매거진의 편집장 한경석님의 글로 만나봅니다.

 


 

영미 팝음악은 비틀즈 등장 이전과 비틀즈 이후로 나뉜다

 

자주 통용되는 말이다. 때때로 과장 광고라는 혐의를 받긴 하지만, 비틀즈는 밴드로 활동한 10년 동안 지금까지 그 어떤 뮤지션도 도달하지 못한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이 명제가 ‘참’이라는 인증을 받았다. 물론 비틀즈가 등장한 시점을 기준으로 음악이 나누어진다는 이야기가 수학이나 물리 공식처럼 정확한 게 아니라는 반대의견도 맞다. 그렇지만 비틀즈의 등장 이후 영미 팝 음악계는 스탠더드 팝을 부르는 조련된 TV 스타가 아니라 철저하게 라이브로 단련된 생동감 넘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주류로 부상하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당시 서로 다른 음악이 서로 다른 스타일로 발전해나가던 영국과 미국이 비틀즈의 등장 이후 하나로 엮이게 되었고, 이를 통해 팝 음악은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 흐름을 주도한 영국 밴드들은 속속 미국으로 진출해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고 불렀다. 그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두에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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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이라는 전쟁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영국 로큰롤 밴드가 미국에 상륙해 거둔 성과는 어마어마했다. 재미있게도 미국 음악 팬들은 영국 뮤지션들이 밀물처럼 미국에 상륙하고 있는데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환호했다. 영국산 밴드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두 가지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정말 미국 음악 팬들이 영국의 음악이라면 앞뒤 재지 않고 좋아했다는 것, 또 하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라 이미 50년대에 영국을 뒤흔들어놓은 미국의 음악, 특히 막 성장하고 있던 로큰롤과 미국에서는 상당한 전통을 가진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블루스가 영국을 뒤흔들어놓고 나서 생긴 반전이라는 것.

 

그러니까 미국 음악이 먼저 영국을 뒤흔들었고, 이를 영국 스타일로 정립한 영국 밴드들이 미국의 음악 팬까지 끌어들이는 상황이 바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었다. 이 현상은 70년대 하드록부터 다시 시작해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힙합, 그리고 R&B까지 이르는 동안 꾸준히 영국과 미국의 침공과 방어가 있었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애니멀스 등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비치 보이스, 멍키스, 버즈, 밴드(The Band) 등의 대항세력이 만들어졌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덕분에 팝 음악의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의 뮤지션들은 끊임없이 새롭고 신선하고 젊은 음악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렇게 만든 음악은 세대를 거듭하며 다양하게 발전해나갔다.

 


'비틀즈'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중심이었다

 

사실 1965년 이전, 그러니까 비틀매니아의 광적인 집착에 질려 외부에 노출된 공간에서 공연하는 걸 중단하기로 선언하기 이전의 비틀즈는 말 그대로 아이들(idol) 밴드였다. 십대들의 열광과 십대 취향의 노래, 십대 취향의 가사 등, 비틀즈는 밴드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정확한 타깃을 갖고 있었다. 비틀즈의 데뷔 싱글 ‘Love Me Do’를 비롯해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등 제목만 봐도 달콤한 말을 잔뜩 써놓은 연애편지 같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실제로도 그런 노래가 많았다. 소녀 팬들이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리고 소리 질렀던 이유다. 비틀즈의 첫 번째 영화 ‘헬프’도 내용만 보면 손발이 오글거렸다.

 

이렇게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성공한 덕분에 비틀즈는 영국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게 해준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미국이 사랑했던 리듬앤블루스, 컨트리, 스탠더드 팝과 달리 브리티시록에는 영국의 독특한 취향을 담아놓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비틀즈의 음반 판매량은 현재 2위를 기록중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1억 3,400만장을 넘어선 1억 7,700만장이다. 미국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모두 다 소해해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음반이 사라져가는 지금 이 시기에 1위인 비틀즈의 기록과 비교한 3천 만장의 차이를 넘어설 가능성은 없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비틀즈의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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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가 등장과 함께 미국 음악 팬들을 열광시킨 건 아니었다. 영국에서 2년 동안 최고의 밴드가 된 후에 1964년 1월에 ‘I Wannt To Hold Your Hand’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비틀즈의 미국 상륙이 시작되었다. 비틀즈의 인기가 폭발한 계기를 제공한 에드 설리반 쇼 출연도 기발한 협상력을 발휘했다. 당시 스웨덴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온 비틀즈가 1964년에 ‘에드 설리반 쇼’ 측에서는 이들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 최고의 출연료를 지불하고 한 차례 공연을 제의했다. 그런데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오히려 흥미로운 역제안을 한다. 출연료는 적어도 상관없다. 대신 한 번이 아니라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 출연하고, 쇼의 시작과 끝에 각각 무대에 서게 해달라. 이게 바로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제안이었다.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TV 프로그램의 어느 부분에서 집중력이 강해지는지를 정확하게 간파한 제안이었다. 에드 설리반 쇼 측에서도 이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틀즈는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던 밴드였으니까. 비틀즈가 주도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브레이크가 없었다.

 


'롤링 스톤즈'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마치 1990년대 브리티시록에서 오아시스와 블러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1960년대에도 음악 매체들은 은근히 이런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물론 60년대에는 영국세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의 자존심을 세워줄 밴드를 만들어 띄워보려고 실제로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틀즈의 공세가 워낙 강력했던 탓에 미국에서는 미국만의 기존 음악을 유지하는 방법을 택했고, 로큰롤과 록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나갔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사이키델릭 록이 등장한 게 반갑고 고마웠을 것이다. 사이키델릭 록은 영국이 미국만큼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영향을 받지 않은 록 장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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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는 리듬앤블루스의 강화였다. 50년대에 미국 블루스 뮤지션들이 대거 영국으로 공연을 떠난 후 영국에서 ‘블루스 리바이벌 붐’이 일어났고, 그게 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토대가 되었다. 블루스와 리듬앤블루스에 영향을 받은 후 미국에서 인정받은 밴드가 바로 롤링 스톤즈였다. 롤링 스톤즈는 비틀즈보다 1년 정도 늦게 데뷔했는데 로큰롤보다는 리듬앤블루스에 빠져 있었고, 비틀즈와 달리 타깃으로 삼은 연령층도 훨씬 높았다.

 

롤링 스톤즈는 블루스의 영향을 포함한 미국적 리듬앤블루스를 밴드의 음악적 토대로 삼았다. 롤링 스톤즈는 1963년 6월에 밴드가 좋아했던 척 베리와 머디 워터스의 곡을 커버한 싱글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싱글을 발표하고 라이브를 치르고 동안 이상하게도 롤링 스톤즈는 호의적인 평을 얻지 못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막나가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음악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평을 계속 얻으면서도 팬들을 열광시키게 되면서 오히려 매체의 악평은 롤링 스톤즈에게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영국에서는 비틀즈 vs. 롤링 스톤즈의 구도가 은근슬쩍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비틀즈가 여성에게 인기를 얻는 말쑥한 록 밴드라면 롤링 스톤즈는 음악도 질펀하고 행동도 괴팍한 망나니 록 밴드였다. 이런 평가가 롤링 스톤즈에게 부담을 주면서도 싫지 않았던 건 1960년대 젊은이들의 정서에는 롤링 스톤즈가 더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이들은 보수적인 기존 사고에 치를 떨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즈는 비틀즈가 세상을 뒤집어 엎는 계기를 만들어낸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미국 투어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롤링 스톤즈는 비틀즈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얻지는 못했다. 투어도 신통치 않았다. 그때까지 미국에 롤링 스톤즈의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지도 못하는 밴드가 공연을 한다, 설령 밴드를 안다고 해도 미국반으로 살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었다. 롤링 스톤즈는 빌보드 1위 싱글을 여럿 갖고 있던 비틀즈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롤링 스톤즈의 기록을 지금 살펴보면 미국에서 6천 600만장이라는 판매량으로 미국내 음반 판매량 14위를 기록중이다. 그러니까 롤링 스톤즈는 1965년 무렵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비틀즈와 대적할 수 있는 거대한 밴드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1965년 이전의 롤링 스톤즈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비중있는 밴드이긴 했지만 아직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구르는 돌이었다.

 

 


 

Writer. 한경석

 

핫트랙스매거진 편집장

중고등학교 때 취미란에 적던 '음악감상'과 '독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직업을 만나

여러 음악지 기자와 편집장을 거치며 지금도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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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7 KEANE은 21세기 브리티시록의 현재를 상징하는 밴드입니다. 2012년 9월 24일 내한을 앞두고 있는 은 기타 대신 피아노로 록음악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음악이 존재하는 브리티시록. 1950년대부터 1980년대의 브리티시록에서 발견하셨듯이 시대별 음악이 제각각이라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한 일입니다. 오늘은 1990년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브리티시록을 음악 평론가 차우진님의 글로 만나보겠습니다.

 


  

1990년대 | ‘브릿 팝’의 탄생

 

특징: 90년대 영국 록은 테이크 댓이나 스파이스 걸스 같은 보이/걸 그룹이 등장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해다. 동시에 7~80년대 인디 록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운드, 일명 ‘브릿 팝’이라고 명명된 스타일의 밴드들이 대거 등장해 미국의 ‘얼터너티브 무브먼트’와 함께 90년대의 록을 정의했다. 오아시스와 블러를 비롯해 라디오헤드, 버브, 스웨이드, 펄프 등이 그 전성기를 열었다면 97년 발표된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는 ‘기타 팝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과 함께 90년대의 록을 상징하는 앨범이 되기도 했다. 이후 90년대 말과 2000년 즈음에 데뷔한 콜드플레이, 트래비스, 뮤즈, 스노우 패트롤 같은 밴드들이 ‘포스트 브릿 팝 밴드’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각기 다른 음악적 특징을 지닌 밴드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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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91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밴드로 700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보유했다. 비틀스와 더 후, 롤링 스톤즈로부터 영향을 받은 60년대 스타일의 로큰롤과 섹스 피스톨즈와 스톤 로지스, 티.렉스로부터 물려받은 다양한 스타일의 사운드를 구사했다. Definitely Maybe(1994)와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 Dig Out Your Soul(2008)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9년 노엘 갤러거가 탈퇴한 뒤 리암 갤러거가 현재의 멤버들과 비디 아이란 밴드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블러: 89년 콜체스터에서 결성된 밴드로 90년대 중반, 오아시스와 브릿 팝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영국적인 캐릭터와 풍경을 다루는 동시에 킹크스나 스페셜즈 같은 영국적인 팝 멜로디를 반영한 블러의 음악은 1집과 2집은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3집 Parklife(1994)와 같은 해에 발표된 오아시스 1집과 함께 화제가 되며 브릿 팝 시대의 시초를 열었다. 하지만 97년경에는 종종 ‘브릿 팝은 죽었다’라는 발언을 하며 이 모든 것이 음악 산업과 미디어의 장삿속이라는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Modern Life Is Rubbish(1993), Parklife(1994), The Great Escape(1995) 등의 앨범들이 브릿 팝 앨범으로 꼽힌다.

 

 

2000년대 | 하이브리드 로큰롤의 등장

 

특징: 21세기의 영국 록은 80년대의 인디 록과 90년대의 브릿 팝, 여기에 70년대부터 90년대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던 펑크 록과 뉴웨이브, 소울과 알앤비 등의 영향을 비롯해 R.E.M이나 소닉 유스 같은 8~90년대 미국 인디 록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스트록스가 촉발시킨 ‘개러지 록 리바이벌’이나 캐나다의 아케이드 파이어가 제시한 월드뮤직과 록의 결합은 조이 디비전과 스미스를 토대로 삼은 2000년 이후의 영국 록 사운드에 비교적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리버틴즈, 악틱 멍키스, 블록 파티, 프란츠 퍼디난드, 에디터스, 카이저 칩스, 킨과 같은 밴드들을 비롯해 라 루, 배트 포 래쉬, 플로렌스 앤 더 머신, 마리나 앤 더 다이아몬즈 같은 밴드들은 개러지 록, 펑크 록과 인디 록, 사이키델릭과 월드뮤직, 소울 등과 결합한 새로운 사운드를 제시하며 더 복잡해진 21세기의 록을 주도하고 있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프란츠 퍼디난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결성된 밴드로 2004년에 Franz Ferdinand로 데뷔하며 UK차트 3위를 기록했고, 2005년에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로 1위를 차지했다.

 

플로렌스 앤 더 머신: 2009년에 1집 Lungs로 데뷔한 밴드로 중세 영국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장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인터내셔널한 민속적 리듬 위에 중세 영국의 민속음악이 연상되는 멜로디와 주술 같은 보컬이 조합해 신선한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 이클립스의 사운드트랙에 신곡 “Heavy In Your Arms”를 공개하기도 했다. 2011년의 Ceremonials는 콜드플레이를 제치고 발매와 함께 UK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킨: 영국의 4인조 피아노 록 밴드로 2002년 싱글 Everybody's Changing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데뷔식을 치렀다. 2004년 데뷔 앨범 Hopes and Fears를 발표해 UK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세계적으로도 4백 만 장 이상 팔렸다. 2006년 2집 Under the Iron Sea를 발표했고, 2012년에는 4집 Strangeland를 발매했다. 2005년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밴드’와 ‘최우수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기타가 없는 록 밴드로도 유명한데 비슷한 구성으로 크게 성공한 밴드는 미국의 벤 폴즈 파이브가 있다.

  

록은 다른 장르와 섞이기 쉬울 만큼 단순한 구조를 가진 음악 양식으로 그 뿌리는 미국에 있지만 다양하고 혁신적인 변화는 거의가 영국에서 이뤄졌다. 그만큼 브리티시록은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언급되지 못한 밴드나 앨범들을 찾아 별도의 계보도를 만들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Writer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에디터. [청춘의 사운드] 저자.
여러 매체에 음악을 비롯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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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에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문학과 음악의 나라, 영국만의 자존심을 우뚝 세운 브리티시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개막식 음악을 폭발적인 록 음악으로 선보인데 이어 개막식과 폐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한 거대한 콘서트는 영국이 보유한 풍부한 문화적 자산으로 전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처럼 런던 올림픽을 전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변모시킨 일등 공신은 바로 브리티시록이었습니다. 1950년대 말, 세계를 강타한 로큰롤 열풍과 브리시티 인베이전의 정점, 비틀즈의 등장부터 1980년대 인디 록의 선전까지, 음악 평론가 차우진님의 글로 브리티시록의 계보를 따라가봅니다.

 


  

오는 9월 24일(월)에 내한하는 영국 밴드 KEANE은 기타 대신 피아노로 록을 연주한다. 킨의 음악은 미국의 벤 폴즈 파이브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21세기의 영국 록의 현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개/폐막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 브리티시록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음악 형태로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받아들이며 로큰롤의 토대부터 신조류까지 제시해왔다. 킨의 내한공연에 맞춰 ‘아주 아주 간단하게’ 살펴보는 시대별 영국 록의 계보도. 여기서 다뤄지지 않은 음악들은 직접 찾아서 채워보자.

 

 

1960년대 | 로큰롤의 탄생과 브리티시 인베이전

 

특징: 록은 1950년대 말 미국의 알앤비와 컨트리가 결합해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난 록은 특히 영국에서 다른 음악들과 맞붙으며 발전을 거듭했다. 1955년 이후에 영국에 상륙한 로큰롤은 젊은이들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이런 배경은 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아예 ‘브리티시록’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기는 근거가 된 특유의 형식과 역사를 형성한 60년대 영국의 로큰롤은 비트뮤직, 비트 록, 로큰롤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60년대 영국 록의 정점은 비틀스가 활동한 63년부터 69년 사이이며 64년 비틀스가 미국의 <애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이후 수년 간 지속된 ‘영국 록의 미국 침공(브리티시 인베이전)’은 그 상징적인 순간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음반 커버에 ‘영국 출신’이란 홍보문구만 붙어도 매진될 정도였다고 한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 비틀스, 더 후, 롤링스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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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The Beatles): 말이 필요 없는 전설적인 밴드. 63년부터 69년 사이에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리버풀사운드’를 창조하고 록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데뷔 후 1년 동안 'Please Please Me', 'I Want to Hold Your Hand', 'Love Me Do' 등의 히트로 영국 최고의 밴드가 되었으며 64년 이후에는 미국에서도 ‘비틀매니아(Beatlemania)’를 탄생시킬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A Hard Day's Night (1964), Beatles for Sale (1964), Help (1965), Rubber Soul (1965), Revolver (1966),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The Beatles (1968), Yellow Submarine (1969) 등의 앨범이 있다.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62년 런던에서 결성되었으며 비틀스와 달리 반항적인 이미지로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활동했다. 가장 오래된 밴드로 70내의 나이에도 여전히 반항아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밴드. The Rolling Stones (1964), I Can't Get No Satisfaction (1965), Sticky Fingers (1971) 등의 명작이 있다.

 

 

1970년대 | 그램과 펑크 록

 

특징: 70년대의 영국 록은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발전했다. 그 중에서도 글램(혹은 글리터 록)과 펑크 록의 등장은 팝 역사상 가장 독특한 형태이자 이후의 음악사를 완전히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했다. 글램은 번쩍이는 의상과 중성적인 이미지의 캐릭터, 그리고 강렬한 하드 록 사운드가 결합된 형태로 등장했으며 SF와 퀴어 컬쳐, 신화와 신학 등에서 모티브를 따온 서사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한편 펑크 록은 강렬하면서도 단순한 코드(쓰리 코드 주의: 3개의 코드만 가지고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와 빠른 리듬을 특징으로 하며 런던 뿐 아니라 뉴욕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경제 불황과 세대 갈등을 배경으로 탄생한 펑크 록은 섹스 피스톨스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중심으로 음악 뿐 아니라 패션과 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폴리스, 엘비스 코스텔로, 프리텐더스에 이르는 뉴웨이브, 펑크 밴드들은 ‘제 2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불리며 미국 차트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 데이빗 보위, 섹스 피스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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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보위: 1967년에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로 초기에는 사색적이고 미학적인 음악을 구사했다. 1972년 가상의 슈퍼스타 ‘지기 스타더스트’를 등장시킨 컨셉트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을 발표하며 글램의 선두주자로 여겨진다.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이 가상의 인물은 데이빗 보위의 정체성을 위협하듯 여겨지기도 했는데, 데이빗 보위는 1년 만에 글램 록 스타로서의 ‘지기 스타더스트’를 영원히 매장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섹스 피스톨즈: 77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행사를 겨냥해서 여왕의 사진 눈과 입 주변에 제목 God Save The Queen을 인쇄한 데뷔 싱글을 발표한 섹스 피스톨즈는 직설적인 사운드와 도발적인 태도로 당시 청년 하위문화를 주류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같은 해 데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를 발표한 이들은 제목의 욕설 때문에 레코드 회사와 레코드 판매점의 법정 소송으로도 비화되었다(제작사인 버진 레코드가 승소했다). 섹스 피스톨즈는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음악사를 바꿔놓은 극소수의 밴드였다.

 

 

1980년대 | ‘매드체스터 사운드’와 인디 록

 

특징: 80년대는 댄스음악과 인디 록이 동시에 등장한 시기였다. 빠른 비트의 하이-에너지(Hi-NRG) 사운드가 등장해 젊은이들을 댄스 홀로 이끌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쟁글거리는 기타 톤에 우울하고 현실적인 노랫말을 담은 인디 록이 인기를 끌었다. 아즈텍 카메라나 스미쓰 같은 밴드들이 인디 록을 한 세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만들었고 펑크의 DIY 정신으로부터 발전한 인디 레이블과 커뮤니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특히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로큰롤과 하우스 비트를 결합한 ‘매드체스터 사운드’가 등장하며 인디 록의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이 외에도 콕토 트윈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같은 슈게이징이나 드림팝 밴드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 80년대의 인디 록은 90년대의 통칭 ‘브릿 팝’이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 스미쓰, 스톤 로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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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쓰: 84년 1집 The Smiths로 데뷔한 밴드로 보컬의 모리세이와 기타의 자니 마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존 레논과 비교될 정도로 독특한 사운드를 정립했다. 특히 빼곡하게 채워진 기타 사운드의 ‘찰랑거리는’ 소리는 자니 마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고 모리세이의 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내용의 가사는 10대들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한다는 평을 받았다. 83년 'Hand In Glove'를 첫 싱글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밴드는 87년까지 The Smiths (1984), Meat Is Murder (1985), The Queen Is Dead (1986), Stangeways, Here We Come (1987) 등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해체했다.

 

스톤 로지스: ‘매드체스터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로 60년대 사이키델릭과 기타 팝, 댄스 리듬을 섞은 데뷔 앨범 The Stone Roses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소속사와의 갈등과 소송으로 수년을 허비하다가 결국 밴드는 해체되고 보컬의 이언 브라운과 기타의 존 스콰이어가 따로 활동하다가 2011년에야 재결성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아시스, 그리고 비디아이의 리암 갤러거가 특히 존경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Writer.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에디터. [청춘의 사운드] 저자.
여러 매체에 음악을 비롯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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