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프로젝트 08 Black Watch/전문가 칼럼' (5건)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가 첫 아시아 공연으로 선택한 현대카드 Culture Project의 8번째 무대 블랙 워치가 수많은 관객들의 호평과 박수 속에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역시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연극답다는 평이 이어졌는데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존 티파니의 연출로 현대 연극의 정수를 보여준 블랙 워치. 연극이 아닌 이슈로서 우리 눈 앞에 펼쳐졌던 블랙 워치 무대의 기억을 <씬 플레이빌>의 객원 기자이신 이혜령님의 글로 되새겨봅니다.

 



시작부터 평소와 다르다. 객석 출입구가 아닌 무대 출입구로 입장을 하고, 무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낯선 모양의 객석이 세워져 있다. 어디서 봤던가? 연출가 존 티파니의 말을 듣고서야 기억해 냈다. 8월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그 축제의 도시에서 밤을 밝혔던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의 현장과 닮아 있었다. 이는 에든버러 성문 양쪽에 솟은 언덕 둔치에 객석을 마련하고, 그 사이로 길게 난 광장 위에서 벌어지는 군악대 축제이다. 1950년 시작하여 지금까지 약 50여 개국의 군악대가 참여했고, 평균 공연 인원만 1,000명 가까이 되는 대규모의 축제이다. 같은 기간에 진행되는 다른 공연예술 축제보다 티켓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울 만큼 인기도 높다. 즐길 것들이 산재해 있는 8월의 에든버러에서 대체 왜 군대의 문화행사가 왜 이렇게 인기가 높은지 의문이 들었었다. 스코틀랜드와 킬트, 백파이프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의문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연극 <블랙 워치>를 통해 답이 보이는 질문이기도 하다.


 

 

 

<블랙 워치>, 그것은 탁월한 연극이고 동시에 좋은 인터뷰였다. 잘 알려진 대로 퇴직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바탕이 되어 작가 그레고리 버크가 대본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극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독백을 하는 남자는 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블랙 워치’의 멤버이다. 뒤이어 당구나 치며 노닥거리는 그의 과거 동료들과 인터뷰를 제안했던 기자가 등장한다. 이라크에서 어땠냐고 묻는 기자와 그게 궁금하면 직접 가보라고 응소하는 퇴직 군인들의 대립 구조는 천천히 허물어 진다. 물론 술과 여자에 관한 우스개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인터뷰어는 전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인터뷰이는 미처 하지 못했으나 실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기자는 다시 묻는다. 그 때의 이라크가 어땠는지가 아니라, 당신들이 이라크에서 경험한 것들이 어땠는지가 궁금하다고.

 

인터뷰의 주제로는 30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특수부대 ‘블랙 워치’의 연대원이 미군의 대체 인력으로 이라크 전에 파병되었을 당시 벌어진 사건이 다루어 진다. 적절한 질문과 진솔한 대답을 따라서, 무대는 술집의 당구대와 이라크 도그우드 캠프의 장갑차 사이를 넘나든다. 인터뷰에 응한 젊은이들은 변변찮은 빵집에 취직하는 대신 더 남자답고 멋져 보이는 직업 군인의 길을 택했다. 비록 과거의 영광은 많이 사라졌지만, <블랙 워치>는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위의 조상이 대대로 용맹하게 싸웠던 자랑스러운 기억이며, 그것을 상징하는 붉은 깃털을 모자에 꽃은 30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특수부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이 된 ‘블랙 워치’는 그 부대의 용맹함만 담아 낸 작품이 아니다. 언론의 보도와 전해오는 소문, 편집된 기억을 통해 여과된 고른 말들은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전쟁터의 현장에 남은 두려움과 과장된 활약의 찌꺼기들까지, 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들은 전쟁터로 보내졌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덥잖은 게임과 난잡한 농담을 이어가고, 제대 후에 먹고 싶은 인도 요리에 관해 떠들었다. 용맹함을 떨치기에는 훈련이 덜 되었고, 두려움을 갖지 않기에는 폭약 소리가 쉴새 없이 터졌다. 제대를 하고 싶어도 서류가 없어졌다는 정부의 대응에 반강제로 다시 전쟁터로 보내졌다. 강한 척을 하기에도 힘에 부친, 아직은 어린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참전을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기억이 자동차 자폭 테러사건이 벌어졌던 때로 거슬러 가며, 긴장은 고조된다.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 사이에서 투입된 명분 없는 전쟁, 그 사이에 터진 자동차 폭탄 테러는 순식간에 상황을 전복시킨다. 이 사고로 세 명의 부대원과 한 명의 통역원이 목숨을 잃었다. 여느 전쟁에서나 일어나는 폭격과 테러, 사고와 사망, 부상.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동원되었던 회피와 과장된 자부심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들은 동료를 잃었고, 스스로 부상을 입었다.

 

인터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이나 집단이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두고 인터뷰라고 칭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문답의 형식을 취하는데, 주로 직접 대면하여 진행되지만 때에 따라 서면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연극 <블랙 워치>에서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그 인터뷰의 내용과 과정을 가능한 고스란히 무대 위에 올렸다. 대사 자체에 에든버러의 강한 억양과 전쟁터에 보내진 군인들의 욕설이나 화법이 드러나고, 스코틀랜드의 사회적 맥락이 엮여 있다. 대사에 대한 이해도가 작품을 이해하는데 미치는 영향력과 거의 같은 선상에 있을 경우, 자칫 다른 문화권이나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관객이 극을 받아들이기에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번역된 텍스트와 무대를 오가는 시선 사이에,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뛰어난 연출이 있었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대형 세트, 특별한 소품들은 도입되지 않았다. 불필요한 것은 최대한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꽉 찼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마도 이것이 존 티파니라는 연출가가 찬사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별다른 오브제도 없고 화려한 기교의 안무도 없다. 노래를 부르지만 뛰어난 가창력을 뽐내는 것도 아니다. 대신 블랙 워치 부대원들의 행진이나 훈련의 일상적인 움직임에 약간의 양식화를 가미하여 반복된다. 반복되는 동작 패턴은 시각적으로, 또 의미적으로 모두 뛰어난 효과를 냈다. 청각적인 요소들의 점층적 고조는 반복의 미학을 극대화했다. 음악과 대원들의 고함소리, 함성이 함께 고조되는 과정은 밀도감 높은 긴장감을 완성했다. 특히 자동차 자폭 테러 사건에서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던 대원의 진술 장면과 뒤이어 재현되는 테러 사건 현장 장면은 이와 같은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정예부대 ‘블랙 워치’와 그들의 사기를 충만하게 하던 백파이프와 드럼 소리, 그리고 자부심으로 넘치는 밀리터리 타투까지. 이들의 관계가 이제서야 이해되었다. 하나 더 분명한 것은 이들의 자부심이 영웅과 영광만을 추대하며 인간적인 상실감을 남기는 전쟁을 더 이상 긍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만든 연극 <블랙 워치>가 그 증거이다.

 

 

 

 

당구대만한 사이즈의 장갑차에서 덜컹거리며 실없는 수다를 떨던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장갑차만한 사이즈의 당구대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때에 대한 기억을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어쩌면 독특한 극의 구조나 연출에서 드러난 실험적인 연극적 특성이 다가 아니었다. 이는 고전을 무대에 올리고 재해석하며 연극을 위한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바로 현재를 이야기하고, 동시대의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의식 있는 노력으로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2011년 12월 5일, 그제서야 지지부진 이어지던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회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쉽지 않다. 그러나 꺼리는 이야기를 꺼내놓은 ‘블랙 워치’ 부대원들과 그 인터뷰를 다시 무대로 올려 놓은 <블랙 워치>는 억지로 영광을 포장하거나 억지부리지 않는다. 다행히 진솔한 인터뷰와 뛰어난 무대가 만나 연극 <블랙 워치>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치유가 시작될 것이다.

 

 


 

Writer 이혜령(@iamflowering)

 

예술파티 프로듀서이자 뮤지컬 제작사 팀장이었고 현재는 서울대 공연예술학협동과정 학생 신분으로

씬플레이빌 공연잡지 객원기자와 하이서울페스티벌 해외팀에서 일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 공연이 단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블랙 워치는 실제로 존재했던 스코틀랜드의 정예부대로 이라크전에 참전하기도 했었는데요.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인 치마를 입어 ‘지옥에서 온 숙녀들’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만큼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부대의 이름을 따온 연극 블랙 워치는 전쟁의 참상과 구성원들의 상처를 사실적으로 구현해내어 큰 호평을 받기도 했죠. 블랙 워치 공연을 앞둔 지금,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의 작품 해석을 월간 <씬플레이빌>의 편집장이신 김일송 님의 글로 만나봅니다.

 


 

 

 

 

11년 전, 미국 경제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비행기 자살 테러로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의 상처로 남아있는 9.11테러다. 부시 행정부는 이 테러의 배후로 알카에다 조직을 지목했고, 그 수뇌부에 오사마 빈 라덴이 있다고 즉각 발표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3년 4월 9일 미국은 연합군을 구성하여 대대적으로 아프가니스칸 침공을 감행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이라크 전이 명분 없는 전쟁임이 밝혀졌지만, 전쟁은 8년 넘게 지속되었고, 지난 해 2011년 12월 5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난한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여기에 참여했던 이들 중에 스코틀랜드 정예부대 ‘블랙 워치’가 있었다.

 

연극 블랙 워치(Black Watch)는 이 전쟁에 참전했던 정예부대 블랙 워치에 대한 이야기다. 블랙 워치에 대해 간략히 마저 소개하자. 스코틀랜드 지방의 전통의상인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전장에 나섰다 하여 ‘지옥에서 온 숙녀들’이란 별명이 붙은 블랙 워치는 대적하기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지옥에서 온’이라는 수식은 괜한 표현이 아니다. 블랙 워치는 1725년 창설되어 3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스코틀랜드의 보병부대로, 6.25 한국전에 참전했던 우리와 인연도 깊은 군대다.

 

워털루 전투, 1ㆍ2차 세계대전 등 분쟁과 전쟁이 벌어진 곳에는 언제나 이들이 있었다. 물론, 이라크 전에도 참전하였다. 당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영국 정부는 파병반대를 외치는 국내여론에도 불구하고, 명분 없는 전쟁에 블랙 워치 소속의 군인 800명을 포함하여, 7,000명 이상의 병력을 이라크로 파병하였다. 이들 중 블랙 워치는 미군도 꺼리는 교전지역인 바그다드로 배치되었다. 종전 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이 전쟁에서 영국은 블랙 워치 소속의 군인을 포함, 총 179명의 희생자를 냈다. 연극 블랙 워치는 이라크 군의 자살테러가 이어지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공연은 사회자의 인사로 시작된다. 배경은 스코틀랜드의 어느 펍. 이곳으로 과거 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블랙 워치 병사들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들이 여기를 찾은 이유는 연극을 준비 중인 작가가 이라크 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듣기 위해 초대했기 때문. 그 초대가 내키지 않았던 병사들은 시시덕거리며 하나 둘 자신들의 경험을 내놓기 시작하고, 연극은 현재와 그들이 증언하는 과거를 오가며 2006년의 스코틀랜드의 펍에서 2004년 11월 바그다드 도그우드 캠프로 타임 슬립한다.

 

대내적으로는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대외적으로 세계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군대라지만, 기실 구성원들이 입대한 이유를 보면 이러한 대의적 명분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을 듯도 하다.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그들이 군대에 지원한 이유는 공허한 명분보다는 취직이 어렵기 때문이나, 단지 군복이 멋있기 때문,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몸 속에 흐르는 폭력의 피 때문이 더 크다. 블랙 워치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런,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대단치 않은 젊은이들이다.

 

 

 

 

전장이라지만 매일 같이 총격전이 오가고, 생사가 오가는 것도 아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던 어느 날, 그런데 이라크 군의 자동차 자폭 테러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영국군 세 명과 통역관 한 명이 사망하고, 여덟 명이 부상당한다. 입대한 이유는 제 각각이었지만, 이제 이들은 단 하나의 존재 이유로 뭉치게 된다. 정부를 위해서도 아니고, 영국을 위해서도 아니고, 스코틀랜드나, 연대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전선에 나서는 이유는 희생당한, 그리고 지켜야 할 동료들을 위해서다. 자신의 소대를 위해, 자신의 부대원과 친구를 위해 그들은 사선에 오른다.

 

이렇듯 연극 블랙 워치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일어난 후를 파병되었던 군인의 입을 통해 담담하게 전달한다. 최근 영국 연극의 경향 중 하나는 ‘버버텀 시어터’다. 이 계열의 작품에 속하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공연되었던 <철로>가 있다. 연극은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영국 철도 민영화의 문제를 폭로했다. 버버텀 시어터란 극적인 갈등 등의 일반적 문법을 사용하지 않고, 인터뷰 등의 형식을 빌려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전하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기법의 연극으로, 주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참여하는 연극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첫 장면에서 보여주었듯 연극 블랙 워치 또한 버버텀 시어터를 표방하고 있다.

 

 

 

 

실제로 이 연극은 작가 그레고리 버크(Gregory Burke)가 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군인을 취재해 쓴 작품으로, 그는 인터뷰와 함께 실제 당시 뉴스화면을 재구성하여 민 낯의 연극을 완성하였다. 또한 연출가 존 티파니(John Tiffany)도 극작가 못지않은 노력으로, 16주간 군대에서 군인들을 관찰해 이 연극을 완성했다. 극작의 의도를 살려, 작품을 속살 그대로를 무대 위에 올렸다. 무대 위에서 눈에 보이는 오브제를 찾을 수는 없다. 어떤 폭격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전혀 과장되지 않는다. 때로 이들은 안무된 장면을 연출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난다.

 

그것을 통해 연극 블랙 워치는 질문한다. 정치가들의 명분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잇속을 차려주기 위해,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이들의 상처에 대해 묻는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가 고쳐 묻는다.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 때로는 스스로조차 납득하지 못한 무의미한 이유들로, 양민을 학살하며 잃어갔던 그들의 인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되묻는다. 그래서 종국에 그들이, 우리 모두는 무엇을 위해 총을 들었는가,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는가 질문한다. 자, 우리는 누구를 위해 총을 겨누는 것일까? 스스로 자문할 시간이다.

 


 

Writer 김일송

 

<월간 씬플레이빌> 편집장. 연극, 뮤지컬, 발레, 콘서트 등 무대예술과 관련 글을 쓴다.

최근에는 아포리즘 사진전 <그 해 여름, 발트에서 발칸까지>를 연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첫 아시아 공연인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면서도 활력 있는 예술로의 승화를 보여준 연극으로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실제 스코틀랜드 부대 이름을 따온 연극 블랙 워치는 전쟁에 참여했던 퇴직 군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쳤기에 어떠한 이야기보다 생생한 연극, 블랙 워치. 얼마 남지 않은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의 무대를 상상하며 블랙 워치의 주인공인 ‘Black Watch’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월간 <더 뮤지컬>의 편집장, 박병성님의 글을 통해 들어봅니다.

 


  

지옥에서 온 숙녀, 블랙 워치

 

한국군은 이라크 전쟁에 서희, 제마 부대에 이어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다. 국제 분쟁이 발발하면 각 나라들은 세계 평화라는 명목으로, 그 이면에는 국제 정세와 자국의 이익에 따라 군대를 파병한다. 이때 파병되는 부대들은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백마 부대처럼 새롭게 조직된 특수한 부대일 경우가 많다. 이처럼 분쟁 지역에 파병되는 부대는 임시로 구성돼서 그 이름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영국의 육군 전투 부대인 ‘블랙 워치(Black Watch, 3rd Royal Regiment of Scotland)’는 좀 특수하다. 


1725년 창설되어 지금까지 대부분의 분쟁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고, 그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블랙 워치 대원들이 영국 최고의 영예로운 상인 빅토리아 십자 무공훈장(the Victoria Cross)을 받았으며,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영예롭게 블랙 워치에 자원 입대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큰 오빠인 퍼거스 보우스(Fergus Bowes)는 블랙 워치 대원으로 1차 대전에 참전에 사망하기도 했다. 영국인들이 블랙 워치 부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특히 스코틀랜드인에게 블랙 워치는 영예이며 자랑이다.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 파병으로 비난을 받아 예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스코틀랜드의 젊은이들은 블랙 워치의 일원이 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고 부대의 일원이 되길 원한다.

 

 

스코틀랜드 정예부대

 

원래 이 부대는 1667년 스코틀랜드 산악 지역에 자발적으로 생긴 수비대였다. 1725년 조지 2세가 이 지역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들을 정식 군대에 편입했다. 이 수비대는 검은 색의 격자 무늬 옷(Tartan)을 입었는데, 이 검은 군복 때문에 이들을 ‘블랙 쟉(Jocks 비격식적으로 스코틀랜드인을 부르는 말), 또는 ‘블랙 워치(검은 수비대)’라고 불렀다. 스코틀랜드 산악 지대 병사들로 구성된 블랙 워치의 용맹함은 명성을 떨쳤다. 1779년 42연대 2대대로 편성된 블랙 워치 부대는 1786년 73연대로 별도 편성되었다. 그리고 1881년에는 다시 42연대와 합병되었지만 블랙 워치라는 부대명은 바뀌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다른 연대와 합병되고 또 분리되기도 했지만 ‘블랙 워치’라는 이름만큼은 유지했다. 소속 부대원들의 자부심과 애정이 그만큼 남달랐다. 블랙 워치 부대원들의 트레이드 마크는 모자에 꽂는 붉은 깃털(the Red Hackle)이다. 이들은 붉은 깃털로 타 부대와 구별시켰다. 다른 연대에서도 이를 본떠 모자에 깃털을 꼽는 행위가 유행됐다. 그러자, 군에서는 42연대 블랙 워치 대대를 제외하고 다른 부대가 모자에 깃털을 꽂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블랙 워치 부대의 특수성만을 인정해준 것이다.


블랙 워치 부대는 출범 이후 자국 내에서 프랑스군들과 전투를 주로 벌여오다가, 1801년 이집트에서 나폴레옹의 무적의 부대에 맞서면서 첫 해외 원정길에 나섰다.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후 나폴레옹 전쟁에서 블랙 워치의 활약은 대단했다. 워털루 전투에도 참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부대의 희생도 컸다. 이후 블랙 워치는 전 세계 분쟁 지역에 참전하는 영국의 전투 부대로서 명성을 떨쳤다. 스코틀랜드의 특수한 군복을 착용하고 용맹함을 떨치는 블랙 워치 부대는 상대 부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미지 출처

 

 

1881년 42연대와 합병되면서 검은 체크 무늬의 군복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블랙 워치의 명성이 변하지는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의 크림 전쟁, 1882년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Tel-el-Kebir 전투에 참가했고. 1885년에는 나일강 원정대로 나섰다. 전 세계에 크고 작은 분쟁은 자주 발생했고 일등 국가를 꿈꿨던 영국은 매번 군대를 파견했다. 그 선봉에는 블랙 워치가 섰다. 보어 전쟁(1899~1902)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해 영국과 트랜스발 공화국이 벌였던 보어 전쟁 때는 영국군이 전쟁에 패배하고도 끊이지 않고 게릴라 식으로 저항하던 보어인을 소탕하기 위해 비전투인들까지도 무자비하게 다루어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1차,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전장에 제일 먼저 배치된 것 역시 블랙 워치 부대였다. 이들이 용맹함은 다른 부대에도 자자했다. 부대의 모토는 ‘우릴 건드리는 자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No One provokes me with impunity)’였다. 스코틀랜드 산악 지대 사람들의 강인함과 용맹함이 부대의 전통으로 이어져서 블랙 워치 부대를 ‘지옥에서 온 숙녀(Ladies to the Hell)’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스커트 군복을 입었기 때문에 숙녀라는 별명이 뒤따랐다. 이들은 한국 전쟁에도 참여하였으며, 북아일랜드 분쟁, 코소보 사태 등 분쟁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던 당시 홍콩에 남은 마지막 부대로 전통적인 블랙 워치 군복을 입고 연병장을 행진했다. 앞줄에는 스코틀랜드인 전형의 콧수염을 기른 장교가 앞장서고 격자 무늬의 스커트형 군복에 이들의 모자에는 블랙 워치의 상징인 붉은 깃털을 달고 있었다. 전통적인 행진 장면이 전 세계 TV로 방영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우방으로서 영국군 역시 참전했다. 블랙 워치 부대는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 주둔하여 활동을 벌이다, 미군의 요청으로 바그다드 근처로 이동 배치했다. 이때 이라크 군의 차량 자폭 테러로 통역을 비롯 4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면서 정치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라크의 피해가 있은 후 마이크 잭슨 장군은 블랙 워치 부대를 다른 스코틀랜드 연대와 통합하여 스코틀랜드 로얄 연대로 편성하였다. 그러자 모병에 어려움을 겪었고, 은퇴한 군인과 정치인, 스코틀랜드 국민들의 반대 의견이 높았다. 결국 블랙 워치는 지금의 스코틀랜드 로얄 연대 3대대로 독자적인 부대로 남게 되었다.

 

 

백파이프 군악대

 

‘블랙 워치’ 하면 전통적인 스코틀랜드 식 군복과 백파이프로 연주하는 군악대를 떠올리게 된다. 킬트(Kilt)를 착용한 군악대들이 백파이프와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은 각종 페스티벌이나 문화 행사에서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바로 블랙 워치의 상징인 백파이프와 드럼(Pipes and Drums) 군악대이다. 원래는 기상 음악으로 연주되던 것이었는데, 크림 전쟁 이후에는 군악대로 전쟁 중에 사기를 북돋기 위한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부대원들은 백파이프와 드럼 소리를 들으며 전우애를 불태웠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백파이프와 드럼 연주 행렬은 블랙 워치의 귀환 행렬 때 상징적인 퍼레이드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군악대 연주로 에딘버러 타투 페스티벌의 고정 행진 팀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북미나 콜롬비아 투어 공연을 했다. 1963년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기 8일 전에 백악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연극 블랙 워치

 

2012년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8번째 주인공이자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폐막작인 스코틀랜드 국립극단 연극 <블랙 워치>는 2006년 에든버러 프린스 페스티벌에 초연되어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4년 이라크의 바그다드 도그우드 캠프에서 벌어졌던 자동차 자폭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사고로 세 명의 군인과 한 명의 통역이 살해당하고, 여덟 명의 군인이 부상당했다. 


블랙 워치 군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함을 자랑하지만 실제 전쟁 속의 젊은이들은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두려움을 애써 감추고 있다. 전쟁 영웅으로만 비쳐졌던 블랙 워치 군인들의 실상을 통해 전쟁의 이면을 고발한다. 세계 곳곳에서는 분쟁이 벌어지고 아직도 이라크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연극 <블랙 워치>는 전쟁 영웅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에 가려진 전쟁의 참상을 보여줄 것이다.

 

 


 

Writer 박병성

 

월간 <더뮤지컬> 편집장.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메트로, 아트뷰, 매거진S 등

각종 매체에 뮤지컬 관련 글 기고. 더 뮤지컬 어워즈, 예그린 어워즈 심사위원 역임.

 

 

 

 

 

[공연 정보] 무대와 경계를 파괴한 실험작,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

[공연 정보] Black Watch의 작가 그레고리 버크

[공연 정보]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에 쏟아진 해외 평론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연극과 뮤지컬의 요소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공연 예술을 창조해낸 작품, 현대카드 Culture Project의 8번째 작품, 블랙 워치.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는 지난 2011년 오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세계 3대 극단, 코메디 프랑세즈의 <상상병 환자> 다음으로 선보이는 두번째 연극으로, 세계적인 연출가 존 티파니와 가장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극단, 스코틀랜드 국립 극단의 호흡 아래 2012년 세계국립극단 페스티벌의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기대감을 모으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국립 극단이 다양한 예술 장르의 벽을 허무는 실험적인 도전 정신으로 현대극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면, 명성과 품격,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세계 3대 극단은 살아있는 역사로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4세기에 걸친 유구한 역사를 가진 프랑스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부터 러시아의 말리 극단,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까지 세계 3대 극단의 역사와 특색을 뮤지컬 작가, 한재은 님의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한 국가가 국립극단을 가진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국립극단의 운영은 국가의 문화 인식을 대표하며, 고유한 연극 역사,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 그리고 현대에까지 이어지는 문화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보통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각 나라의 국립극단은 각 국가의 거울이 되지 않을까.

 

국립 극단들 중에서도 프랑스의 코메디 프랑세즈, 러시아의 말리 극단,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세계 3대 극단으로 꼽힌다. 이 극단들은 17세기부터 세계 연극사를 만들어 왔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자국의 공연 유산을 보존하며 세계 연극계를 이끌고 있다.

 


프랑스: 코메디 프랑세즈

 

 

 

 

코메디 프랑세즈는 1680년 파리 1구 리슐리외 가(rue de Richelieu)에 설립되었다. 프랑스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에 소속된 극단으로, 프랑스 유일의 극장 내 자체 극단이다.

 

프랑스 연극사상 최고의 희극작가로 평가되는 몰리에르는 당대 최고의 희극 연기자이기도 했다. 1973년 몰리에르는 자신이 쓴 희곡 <상상병 환자>의 공연 도중 쓰러져 숨을 거두는데, 이후 몰리에르 극단은 마레 극단과 합쳐져 게네고 극단이 된다. 1680년 국왕의 명으로 이 극단이 왕립 극장인 부르고뉴 극단과 통합되어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 Française)'가 설립되었다. 이 때문에 코메디 프랑세즈는 '몰리에르의 집(La maison de Molière)'으로 불리기도 한다. 1793년 프랑스 혁명 당시 극장이 폐쇄되고 배우들이 수감되었으나 이후 수립된 정부가 극장의 재개관을 허락하여 현재까지 고정적 레퍼토리를 가지고 공연을 하고 있다.

 

몰리에르가 배우였기 때문일까? 평등을 추구하는 혁명의 나라답게, 코메디 프랑세즈는 3대 극장 중 가장 배우에게 많은 권한을 주는 극단이다. 27명의 배우로 시작한 코메디 프랑세즈는 현재 오직 이 극단에서만 활동하는 60명의 배우로 이루어져 있다. 배우들은 공동 작업을 거쳐 무대에 오르며, 작품의 레퍼토리화를 추구하여 항시 공연이 가능하다. 이 극단을 통해 쟝 루이 바로(Jean-Louis Barrault), 이자벨 아자니(Isabelle Adjani)와 같은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코메디 프랑세즈는 국립극단으로서 프랑스 연극의 전통을 보존하며, 원형에 가깝게 재현된 고전작품을 상시 공연한다. 레퍼토리로는 단연 몰리에르의 작품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라신(Jean Racine), 코르네이유(Pierre Corneille)의 작품 역시 초기부터 공연되어왔다. 1구의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 외에 6구에 있는 비외 콜롱비에 극장(théâtre du Vieux-Colombier), 스튜디오 극장(Studio-Théâtre)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해 대략 800편의 작품을 선보이며 연간35만 명의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유럽, 미국, 한국, 일본, 호주, 남아프리카에 걸친 광범위한 투어활동을 하고 있다.

 

 

러시아: 말리 극단

 

1824년 모스크바에 개관한 모스크바 국립아카데미 말리극장에 소속된 연극 전문 극단이다. 말리는 ‘소(小)’를 뜻하는데, 오페라용 대형 극장인 볼쇼이(Bolshoi) 극장에 대응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극작가 오스트로프스키(Alexander Ostrovsky)의 54개 작품 중 40개 작품의 초연이 이곳에서 이루어져 ‘오스트로프스키의 집’이라고도 불리며, 또한 모스크바 사람들의 문화생활에 끼친 영향이 아주 크다고 해서 ‘모스크바의 제2대학’으로도 불린다.

 

 

이미지 출처

 

 

말리 극장은 개관과 함께 일류 배우진을 집결시켜 고골(Nikolai Vasilevich Gogol)의 <검찰관> 등 러시아의 명작과 셰익스피어, 실러 등의 고전극을 상연하였다. 러시아 리얼리즘의 시조인 고골, 신화적인 배우 시쳅킨(Mikhail Shchepkin)에 의하여 기초가 다져진 무대는 연극에서 리얼리즘 연극의 역사를 만들었으며, 알렉산드린스키(Alexandrinsky) 극장과 함께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러시아 연극의 발전을 견인해왔다.

 

말리 극장 역시 러시아 고유의 명작들을 상연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고 있으므로 이 곳에서는 고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말리 극장의 대표작으로는 역시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를 꼽는다. 체호프 외에도 고골, 폰비진(Denis Fonvizin)과 불가꼬프(Mikhail Bulgakov), 몰리에르의 희극 등을 상연하며, 특히 셰익스피어의 극을 해석하는 데에서도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100명이 넘는 단원을 포함해 700명이 넘는 극장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교향악단과 전문합창단이 있는 유일한 연극 극장이다. 1809년 황립 연극 학교로서 설립된 시쳅킨 연극 학교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 학교이다. 1983년 말리극장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레프 도진은 말리 극장이 배출한 세계적 연출가이다. 도진은 러시아 연극 최고 권위의 황금 마스크 상을 세 차례 수상하고 피터 브룩, 하이너 뮐러 등이 수상한 바 있는 유럽 연극 상을 수상하는 등 연극연출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스크바의 하늘>, <형제자매들>, <갈매기> 등을 선보이며 말리극장을 세계적인 예술극장으로 키워냈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이미지 출처

 

 

셰익스피어는 세계 각국에서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위대한 극작가이다. 따라서 영국의 국립극장인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는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가장 잘 상연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공존한다. 1875년,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셰익스피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이 세워졌다. 흔히 RSC로 불리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1879년 설립되어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을 무대로 공연을 펼치게 된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은 1926년 화재사고로 사라졌다가 1932년 재건되었다. 2010년에는 다시 문을 열면서 마치 옛날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장처럼 관객이 무대 3면을 둘러쌀 수 있는 돌출 무대를 선보였다. 1961년 조직 개편 때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면서 독립, 장기계약제로 단원을 확보하는 한편, 피터 홀(Peter Hall)이 연출책임자로, 트레버 넌 경(Sir Trevor Nunn)이 예술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00년부터는 에이드리언 노블(Adrian Noble)이 예술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700여명의 스태프가 있으며, 1년에 20작품 가량의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맥베스>,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밤의 꿈>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 단연 극단의 주된 레퍼토리이지만 버나드 쇼(Bernard Shaw), 리처드 셰리든(Richard Sheridan) 등의 작가와 현대 영국 작가의 신작 역시 상연하고 있다. 또한 매년 <셰익스피어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언제나 더 앞선 셰익스피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특징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연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는 것이다. 1955년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였던 피터 브룩(Peter Brook)을 로열셰익스피어극단(RSC) 상임연출가로 발탁한 것은 RSC의 진취성을 보여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이 된 피터브룩은 RSC와 함께하면서 <한여름 밤의 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셰익스피어의 초기작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Titus Andronicus)>을 실험적으로 연출하며 세계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 작품들은 지금도 현대 연극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예술감독인 트레버 넌 경 역시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연출로 활약해 왔으며 RSC와 함께 <캣츠>를 제작하면서 RSC의 배우들이 뮤지컬 연기에도 바로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RSC의 현대적이고 실험적 정신은 전통을 혁신하고 장르 간 경계를 허물며 넓히며 현대의 공연 역사를 만들어왔다.


 

2011년에는 코메디 프랑세즈가 현대 카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내한하여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 몰리에르의 <상상병 환자>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렸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국립극단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영국과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블랙 워치>가 오는 10월, <상상병 환자>에 이은 현대카드 Culture Project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한 <블랙 워치>는 2006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초연 이후 22개 상을 받으며 3개 대륙에서 20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세계 3대 극단은 어딘가에서 정해준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쳐 그렇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세계적 극단의 역사를 함께 할 순간을 기대해본다.

 

 


 

Writer 한재은

 

뮤지컬 작가. 아리랑 국제방송 라디오 [It Classic] 작가.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김포대에 출강하고 있다.

 

 

 

 

 

[프로젝트 안내]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4 코메디 프랑세즈 공연 안내

[현장스케치] 몰리에르식 웃음 속에 숨겨진 날 선 비판과 비관적 색채를 더한 수작,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4 코메디 프랑세즈 <상상병 환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는 특별합니다. 세계적인 연출가 존 티파니의 연출과 배우들의 역동적인 연기는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또한 파격적인 무대구성으로 관객들을 낯선 곳으로 초대하죠. 낯선 곳에서 관객들은 새로운 연극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 세계가 블랙 워치에 열광하는 것은 이 낯설고 새로운 연극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죠. 이처럼 놀라운 기발함으로, 혹은 그보다 더 실험적인 상상력과 입체감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작품들을 이혜령님의 글로 만나봅니다.

 


  

TV 드라마나 영화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로 지금, 바로 눈 앞에서 무대만의 통찰을 통해 선보이는 뛰어난 작업들이 있다. 통상적으로 ‘실험적’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이 바로 그러한 구분 아래에 있는 것. ‘실험적’이라고 평가되는 작품들은 우리가 알던 익숙한 무대, 뻔한 장면 전환, 당연한 마무리와 커튼 콜이 가져오는 지루함을 완전히 전복한다. 낯선 음악과 움직임, 전환이 돋보이는 ‘실험적’인 연출은 이미 알고 있던 고전이나 소재에 대한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블랙 워치처럼 놀라운 기발함으로, 혹은 그보다 더 실험적인 상상력과 입체감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작품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단순히 실험으로만 끝나지 않은, 말하자면 성공적인 실험의 무대들 말이다.

 

 

파격과 실험성, 기발함의 완벽한 조합,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Hamlet (햄릿)

 

 

이미지 출처

 

 

유럽에서도 가장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도시 베를린의 매력은 ‘낯섦’에서 온다. 분단의 흔적이 하나의 도시 안에 예술적으로 압축되어 있다는 포인트는 이제 너무 식상할 지경이고,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아트마켓부터 밤새워 이어지는 파티와 클러빙까지 핫한 것들이 모두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감각에 깊은 예술적 성취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을 꼽자면,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을 들겠다. 1962년 창단 이후 독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극단! 뛰어난 연출가이자 예술감독인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를 중심으로 날카롭게 반짝이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손을 거쳐 샤우뷔네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실은 벌써 한국에서도 2010년 공연되어 새롭다 할 수는 없겠지만, 작품에 가미된 연출가의 연극적인 상상력과 흥미로운 실험은 언제 떠올려도 신선하다.

 

 

[영상 PLAY] 모바일에서 접속 시 클릭 해 주세요.

  

 

무대는 흙더미가 앞 공간을 뒤덮은 가운데 시작된다. 그 위로 물이 뿌려지면, 빗 속에서 진행되는 선왕 햄릿의 장례식 장면이 연출된다. 빗줄기와 나란하게 금속 줄들이 무대 중앙에서 커튼과 같은 막을 이루고 있다. 배우들은 그 앞뒤를 오가며 서로 다른 입장에 따라 감정을 속이고, 음모를 드러낸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햄릿이 촬영한 인물들의 대화는 금속 커튼 막에 투사된다. 이미 미디어 아트가 연극 무대에 접목되며 영상기술의 무대화가 낯설만한 단계는 넘었다고들 하지만, 같은 미디어 아트도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도입되느냐는 관객에게 전혀 다른 감흥을 주기도 한다. 영화적 기법뿐 만이 아니다. 충격적인 배우의 움직임과 오브제를 통한 표현, 그리고 록음악이 접목된 무대 위에는 사뭇 특별한 햄릿과 오필리어가 서 있다. 고전의 깊이를 더 파헤치고 거기에 또 다시 실험하는 샤우뷔네의, 그리고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햄릿>. 그의 작업에는 파격과 실험성, 기발함이 완벽하게 적절한 수준으로 스며들어 있다. 흘러 넘치지 않아 과하지 않고, 동시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무대와 연출, 배우들은 낯섦에도 불구하고 진정 몰입하기에 충분하다.

 


“힘들면 지둘려. 그럼 바람이 불어 온다.” 오태석의 The Tempest (템페스트)

 

 

이미지 출처

 

 

연출가 오태석의 스타일로 재구성된 셰익스피어스의 템페스트는 오묘한 매력이 풍성하고 또 깊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공부한 영문학과 학생에게도 익숙하지 않고, 전통 연희를 공부하고 즐기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낯설거나 어색하지도 않은 오묘함이 있다. 말하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지 않고, 대신 노래하듯 우리 전통 운율에 맞춰진 대사는 외국인들의 마음을 더 잘 움직였다. 뜻이 무엇이건 간에 리듬에 맞춰 이야기를 따라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에서 상상력이 배가 되기 때문일까. 그렇게 오태석 방식으로 재 탄생된 템페스트는 2011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극찬을 받은 바 있으며,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욕망과 배신, 복수와 용서가 이어지는 원작 <템페스트>는 그저 따뜻하거나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삼국유사 중 가락국기의 구전이 덧칠 되면서, 마치 우리의 구전 설화나 민담처럼 따뜻하고 즐거운 용서가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이미지 출처

 

 

은은한 빛깔의 한국적인 의상, 싸리 빗자루가 세워진 심플한 무대, 북소리와 징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3•4조나 4•4조로 전해지는 대사들은 지극히 전통적이면서도 낯설다. 따지고 보면 한국적 전통이라고 하기엔 완전히 한국적인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새롭다. 아마도 이 작품이 진정 성공적인 실험이었음 알 수 있게 하는 지점이 아닐까? 실험적이라는 표현에는 완벽하지는 않다는 뉘앙스가 언뜻 비치기 마련. 하지만 이미 수 편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색을 깊고 풍성하게 형성한 거장의 실험은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이 절정에 달한 무대가 되었다. 시조의 운율에 맞춰진 대사들의 위로가 그리도 따뜻하게 마음에 스며든다.

 


무대라는 캔버스를 위한 예술, 로버트 윌슨의 Einstein on the Beach (해변의 아인슈타인)

 

일단 너무 당황하지 말자. 하지만 무대 위에서 서로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제각각 자신의 파트에서만 열연하는 배우와 음악, 소품이나 무대 이미지들을 보면 분명 당황할 것이다.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기차, 우주선, 텍스트, 젊은이들이 묘한 분위기 속에서 섞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체 이 무대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와 같은 질문에 로버트 윌슨은 일단 ‘오페라’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이 또한 복합적인 예술 작품이라는 측면에서의 장르 구분일 뿐, 전통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오페라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영상 PLAY] 모바일에서 접속 시 클릭 해 주세요.

  

 

전위음악가 필립 글래스, 현대 무용가 루신다 차일즈와의 공동 창작 작업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로버트 윌슨의 대표적으로 꼽힌다. 1975년 글래스와 함께 처음 작업을 시작할 당시 다양한 전위 예술의 흐름과 꽤 친숙했던 글래스는 유사한 예술적 배경을 가진 윌슨과 쉽게 유대감을 형성시켜나갔다. 윌슨은 작업을 시작할 때 연극 대본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지 연극이라는 분야를 선도적으로 이끈 연출가답게, 화가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대본 분석보다 앞서, 몇 개의 무대 이미지를 스케치하는 식으로 진짜 그림을 그린다. 그리하여 텍스트가 아닌 시각적인 이미지에 기반한 연극이 만들어졌다. 세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설정한 후 각자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해하고 또 조립한 이미지를 무대에 옮겼다.

 

 

미지 출처

 

 

그들의 콜라보레이션은 줄거리에 국한되지 않은 새로운 시공간적 구조를 완성해냈다. 무려 5시간 동안 줄거리도 없이 진행되는 연극에 관객들은 당황했고, 누군가는 자리를 뜨고, 누군가는 쉬었다가 다시 들어와 보기도 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될 때 당황스런 무대를 마주하여 엉거주춤 굳어버렸던 시선은 그 무대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멈춰있게 하는 감동으로 이어졌다. 평단의 찬사와 대중적 성공. 윌슨의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은 기존에는 누구도 경험케 해주지 않았던 낯선 감정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했다. “아무것도 이해하려고 할 필요 없다. 이 작품은 직접 보고 거기에 빠져들어 헤매도록 만들어졌다"는 그의 말대로 말이다.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천재적인 무대, 블랙 워치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블랙 워치는 그야말로 화제작이다. 끊이지 않는 찬사와 함께 이슈를 낳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리뷰를 남긴 언론사에 따라서 제각각 이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 문제를 다뤘다는 소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거나 군대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도하며 깨닫는 현실이 주는 가감 없는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 격찬의 이유를 단정짓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블랙 워치와 비슷한 소재나 전쟁이 주는 충격에 관해서는 수없이 많은 전쟁 영화나 소설, 연극에서도 이야기해왔다. 게다가 구체적인 내용이란 원작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뤄졌다. 그렇다면 뭘까? 자, 똑같은 물도 다른 형태의 그릇에 담아내면 그 모양이 달라지기 마련. 즉 같은 소재와 이야기도 무대화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입체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블랙 워치는 무대 위에 구현된 실험적인 상상력이 선명히 돋보인다. 게다가 남자로만 구성된 12명의 배우가 만드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창의적인 구조물, 강렬한 음악이 낯선 방식으로 구성되어 천재적인 무대를 꾸렸다. 실험적인 작품을 통한 남다른 감동에 목마른 가을, 때 마침 찾아온 이 공연을 운명적이라고 말해도 될까. 

 

 

[영상 PLAY] 모바일에서 접속 시 클릭 해 주세요.

 

 

연출가 존 티파니는 블랙 워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보인다. “이것이 스코틀랜드가 더없이 자랑스러워할 가장 확실한 연극”이라고 못박는 그의 자신감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시대를 관통하며 소통을 이뤄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는 무대와 음악을 통해 실험적인 연출을 선보일 뿐 만 아니라, 깊고 뾰족하게 인간과 삶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말대로 이 작품에는 나레이션, 노래, 움직임, 코미디, 영화, 정치, 무엇보다도 관객들과의 소통하려는 시도가 모두 담겨 있다. 전혀 격식을 따지거나 딱딱하지 않게 동시대적인 사건과 이슈들에 깊게 관여하며 바로 지금, 현재를 향해 내달린다. 이런 깊이가 없었다면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창의적인 무대, 음악도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블랙 워치에 대한 전 세계의 찬사에는 누구도 이견을 갖지 않는다.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을 통해, 더 늦기 전에 그 격찬의 흐름에 합류해보자.

 

 


 

Writer 이혜령(@iamflowering)

 

예술파티 프로듀서이자 뮤지컬 제작사 팀장이었고 현재는 서울대 공연예술학협동과정 학생 신분으로

씬플레이빌 공연잡지 객원기자와 하이서울페스티벌 해외팀에서 일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현대카드 패션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