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전문가 칼럼' (8건)

 

입가에 절로 미소를 띠게 만드는 능력자.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천재성을 지닌 그의 작품은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자유분방하게 그려내는 스케치 속에 삶을 녹여내는 마리스칼은 대중들과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는 특별한 디자이너기도 하다. 그래픽, 제품, 패키지, 웹 등 전방위로 활동 중인 그는 인테리어와 가구 등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도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는 작가다. 마지스(Magis), 모로소(Moroso), 나니 마르퀴나(Nani Marquina), 아르떼미데(artemide), BD 바르셀로나(BD Barcelona)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 그의 작품들은 ‘아트 오브 리빙(Art of Living)’의 상징이다. 강아지 모양의 의자, 오브제가 된 알파벳, 모자 쓴 남자를 형상화한 조명 등 소소한 모티브를 예술적인 오브제로 변모시키는 그의 탁월한 감각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어렵고 낯선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직접 누리는 즐거움이라는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그의 디자인은 생활 속의 예술을 실현해 줄 매력적인 도구다.

 

 

일상의 가구가 작품이 된다

 

 

DUPLEX STOOL (출처: Estudio Mariscal)

 

 

마리스칼이 디자인한 공간과 가구 등은 미적인 면을 강조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 스타일이 돋보인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에서도 볼 수 있었던 <듀플렉스 스툴(Duplex Stool)>은 다섯 개의 각기 다른 컬러의 선으로 구성되었다. 직선이 아닌 구불거리고 휘어진 형태의 다리와 빈티지한 컬러의 조합이 시선을 끈다. 장식품처럼 거실이나 주방에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하는 물건이니만큼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움도 포기하지 않는, 아트 오브 리빙의 실천이다. 마리스칼이 멤피스(Memphis) 그룹을 위해 디자인한 카트 <힐튼(Hilton)>, BD 바르셀로나와 협업한 <거미(Araña)> 조명, 모로소와 함께한 <알레산드라 암체어(Alessandra Armchair)>, 아르떼미데와 함께한 관절형 램프 <로텍(Rotek)> 등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란 호텔 도미네 빌바오(Gran Hotel Domine Bilbao)의 객실 도어와 각층을 표시하는 사인 (출처: Estudio Mariscal)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맞은편에 위치한 그란 호텔 도미네 빌바오(Gran Hotel Domine Bilbao)는 포스트 모더니즘 스타일의 집대성과도 같다. 마리스칼 스튜디오가 건축과 인테리어, 커뮤니케이션, 가구, 패키징 등 전반적인 디자인을 모두 총괄했던 프로젝트이다.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그림을 보는 듯 면과 컬러의 분할로 이루어진 객실 도어와 각층을 표시하는 사인, 로비와 객실에 배치된 <그랜드 스위트(Grand Suite)> 라운지 체어와 <도미네(Domine)> 램프 등 건축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예사롭지 않다.

 

 

호텔 푸에르타 아메리카(Hotel Puerta America)의 객실 내부와 객실 카드 키 (출처: Estudio Mariscal)

 

 

'그란 호텔 도미네 빌바오 프로젝트'와 함께 그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한층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호텔 푸에르타 아메리카(Hotel Puerta America) 프로젝트'다. 톤 다운된 색색의 타일로 마감한 바닥, 모던한 형태의 컬러풀한 가구, 기하학적인 패턴의 모노크롬 침구, 손으로 쓴 듯 자연스러운 객실 번호. 장 누벨(Jean Nouvel), 렘 쿨하스(Remment Koolhaas), 자하 하디드(Zaha Hadid)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함께 참여한 호텔 푸에르타 아메리카에서도 그만의 표식은 견고히 살아 있다.

 

마리스칼의 'H&M 프로젝트'는 포스트 모더니즘 스타일에 팝 아트(pop Art)적인 성향이 더해졌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달리 내부로 들어서면 LED 스크린과 조형미 넘치는 오렌지 색 계단, 그가 직접 그린 12명의 대표 얼굴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마리스칼이 디자인한 H&M 매장은 그의 넘치는 상상력에 힘입어 화제를 낳았다. 참고로 서울 압구정 H&M 매장에서도 그의 드로잉을 볼 수 있다.

 

 

볼수록 즐거운 해피 바이러스

 

 

마리스칼 <훌리안(Julian)> 스케치와 작품 (출처: Estudio Mariscal)

 

 

마리스칼의 스케치는 아무렇게나 그은 선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쉬지 않고 관찰하고 상상하며 삶의 행복을 아는 이의 깊은 눈빛이 담겨 있다. 마지스와 함께 한 키즈 컬렉션 ‘미투(Me Too)’ 시리즈는 그의 스케치처럼 미소가 번진다. 마리스칼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훌리안(Julian)>은 색색의 의자로 변신했고 아이들은 장난감 같은 <훌리안>에게 금새 반했다. 골판지로 직접 조립해 집 모양을 만드는 <빌라 훌리아(Villa Julian)>는 어른들도 탐내는 장난감이다. 국내에 소개됐을 당시 금세 품절 사태를 낳기도 했던 아이템이다. 귀여운 블록을 쌓아 만든 <라드릴로스(Ladrillos)> 책장, 의자를 만들 때 사용한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스케치로 담긴 <레이엣(Reiet)>은 컬렉션의 욕구를 높인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내 아이에게 사주고 싶은 가구가 되기에 충분하다. 마리스칼의 가구처럼 아이들과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디자인이 담긴 가구는 그리 흔치 않다.

 

 

MR. LIGHT (출처: Estudio Mariscal)

 

 

카시나(Casina)를 위해 디자인한 <미스터 라이트(Mr. Light)>는 남자가 모자를 쓴 형상을 테마로 만들었다. 램프의 높낮이와 방향을 조절하면 마치 남자의 키가 커지기도 하고 모자를 눌러 쓰는 것 같기도 한 재미있는 이미지가 연출된다.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멋스러운 오브제이고 유머를 유발하기도 한다. 마리스칼의 가장 큰 장점인 경쾌하고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웃음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현재 세계적인 소셜 트렌드 중 하나는 ‘유머’다. 싸이의 세계적인 성공에서 알 수 있듯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즐거움이다. 마리스칼의 작품 속에는 그 해결책이 담겨 있다.

 

 

Color is Always Wonderful

                                                                  

TOK&STOK BEAUTIFUL COLORS (출처: Estudio Mariscal)

 

 

마리스칼은 색을 잘 쓰는 디자이너다. 스케치는 물론 의자, 카페트, 화분, 테이블 웨어 등에서 드러나는 본능적인 컬러 감각은 단연 최고다. 디자인 카펫 브랜드 나니 마르퀴나와 함께한 <비스트&플라워(Beast&Flower)>나 <그랜드 스위트> 라운지 체어, <로텍> 조명, 'H&M 프로젝트', '호텔 푸에르타 아메리카 프로젝트' 등에서 보여 지듯 그의 디자인이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컬러의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리스칼의 가구 작품 외에 알파벳 오브제 작업은 그의 컬러 센스를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핸드 드로잉으로 완성된 개성 있는 알파벳에 핫핑크, 그린, 오렌지, 블루 등 색을 입혀 만든 조형물은 예술 작품이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서체이기도 하다. 알파벳 작업은 지난해 브라질 리빙 브랜드 TOK&STOK의 마리스칼 컬렉션 중 '뷰티풀 컬러스(Beautiful Colors)' 시리즈로 탄생하기도 했다. 접시, 컵, 침구, 벽지 등 ‘살림’으로 탄생한 컬러풀한 알파벳 패턴은 공간을 생기 있게 연출한다. 마리스칼의 작품들은 공간을 바꾸는 ‘컬러의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조력자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

 

 

TOK&STOK BEAUTIFUL DOGS (출처: Estudio Mariscal)

 

 

자연과 동물, 인간이 서로 공존하는 삶을 지향하는 마리스칼의 가치관은 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반영된다. 형태 자체에서 오가닉스러운 선이 느껴지는 <알레산드라 암체어>와 단단한 바위를 깎아 만든 것 같은 원시적인 형태의 <피에드라스 시트(Piedras Seats)>, 의자 등받이 부분에 나무를 새겨 넣은 <알마(Alma)> 체어, 나니 마르퀴나의 <데스페르타(Despertar)> 카펫은 납작한 돌멩이를 떠올리게 하는 유연한 곡선을 닮아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번 시즌 TOK&STOK의 컬렉션에는 강아지를 테마로한 '뷰티플 독(Beautiful Dogs)' 시리즈도 포함됐으며 100%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린 체어(Green chair)>는 본격적인 친환경 작품이다.

 

대형 설치 작품 중에서도 마리스칼의 자연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해변에 세운 커다란 나무를 형상화한 작품 <라 피네다(La Pineda)>, 바르셀로나 해변의 상징 웃고 있는 집게발을 가진 거대한 새우 <라 감바(La Gambar)>, 발렌시아 공과대학교(Polytechnic University of Valencia) 캠퍼스에 설치된 스테인리스 스틸 선인장 조각 <캑터스(Cactus)>가 그 예이다. 비토리아 가스테이즈에 있는 레스토랑 이케아(Restaurant Ikea)는 동화처럼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하다. 마법의 숲을 현실로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얼기설기 서로 교차 시켜 놓은 나무들로 장식한 천정과 벽면 등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위트 넘치는 꽃게 모양 펜던트는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요소이다.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에서의 식사는 입만 즐거운 것이 아닐 것이다.

 

스페인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리스칼이 그려내는 세상은 기쁘고 찬란하다. 누구나 지치고 힘든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힘을 지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3월 16일 막을 내리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Writer. 정소정
               
 리빙레이블 대표
                라이프스타일 관련 전문 아트북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바르셀로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예술가들이다. 피카소(Pablo Picasso), 달리(Salvador Dalí), 그리고 가우디(Antoni Gaudí)는 바르셀로나를 예술의 도시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강력한 예술적 정서는 창조적인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바르셀로나에서 하비에르 마리스칼과 같은 거장이 탄생한 것에는 위의 선각자들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리스칼 외에도 국내에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디지털 디자인의 선두주자 '바사바 스튜디오(Vasava Studio)', 프로젝트그룹 '바다붐(BADABUM)', 출판 일러스트의 대가인 '아르날 바예스테르(Arnal Ballester)', 그들의 조력자인 '훌리 카페야(Juli Capella)' 등이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바르셀로나의 디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디자이너 그룹

 

바사바 스튜디오(Vasava Studio)

 

바사바 스튜디오(Vasava Studio)에서 디자인 한  2014년 캘린더 (출처: VASAVA STUDIO)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창의적인 바르셀로나의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풍부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바사바 스튜디오'의 웹사이트(http://www.vasava.es)를 들여다보면 그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문을 연 이 스튜디오에서는 매년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데, 같은 회사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라면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사바 스튜디오 멤버들은 '자기스타일이 없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라고 한다. 늘 새로운 도전 속에서 축적되는 경험이 자산이며 경쟁력이라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즐긴다. 바사바 스튜디오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그래서 바사바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늘 신선함을 유지한다.

 

 

프로젝트 그룹 바다붐(BADABUM)

 

2011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전시된 바다붐(BADABUM)의 작품 (출처: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프로젝트 그룹 '바다붐'은 2010년,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아트 분야에서 광범위한 경험을 가진 세 명의 작가에 의해 결성되었다. '바다붐'은 제품의 스타일이 아닌 제품 자체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하여 작업을 진행한다. 또한 이들은 전통적인 생산 공정을 예술 분야로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작가가 직접 번호를 매기고 서명한 작품을 목판화나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한 포스터, 접지된 책 등을 출판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수공예 방식의 맛을 살리면서 그래픽의 표현을 구현해내어 디지털 홍수 속에서 차별화된 작품을 만든다. 그들은 디지털 프린팅 기법을 쓰지 않는 작은 공방들과 함께 작업하며 60~300개 정도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적당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르날 바예스테르(Arnal Ballester)

 

아르날 바예스테르(Arnal Ballester)가 그린 책 (출처: ARNAL BALLESTER, 왼쪽, 오른쪽)

 

 

'아르날 바예스테르'는 바르셀로나의 마사나 디자인 아트스쿨(Escola Massana Center d'Art i Disseny de Barcelona) 교수이자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의 에너지 넘치는 습작들은 지중해 환경에서 살아온 스페인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함으로 가득하다. 기타 치는 사람, 권투 하는 복서, 와인 잔을 든 여인과 탱고를 추는 여인들의 모습이 작지만 역동적으로 그려져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1993년, 스페인 문화부의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국가상(Premio Nacional de Ilustracion de Libros para Nioos del Ministerio de Cultura) 수상을 시작으로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에서 그 해 최고의 아동서에 수여하는 라가치상(Ragazzi Award, 1994)을 수상하였고, 30대 대표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1996)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그림이 실린 그림책이 판매되고 있으며, 여러 번의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기 좋은 터전

 

세계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바르셀로나는 ‘핫(hot)’한 도시다. 풍부한 감성과 개성이 돋보이며 여유 넘치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국제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열정적인 크리에이터들이 모여들어 정착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색을 마음껏 드러내며 작업하기 좋은 터전, 디자이너들이 자유로이 숨쉴 수 있는 도시의 공기가 크리에이터를 유혹하고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바르셀로나에는 디자이너들이 서로 교류하고,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여러 단체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두 단체, 온라인 상 교류의 장인 ‘터미널B’와 오프라인에서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FAD’를 살펴보자.

 

 

온라인의 활발한 교류 공간, '터미널B'

 

‘터미널B(www.terminalb.org)’는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교류할 수 있는 온라인 상의 열린 광장 같은 공간으로 2,600여 명이 등록되어 있다. 바르셀로나의 이니셜 ‘B’에 세계 각지의 크리에이터들이 마지막으로 정착하는 종착역이란 의미를 담은 ‘터미널’을 결합해 지은 이름으로 2006년 처음 만들어졌다. 터미널B는 영역의 경계 없이 서로 교류하는 장으로 디자이너는 물론 건축가,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 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도 참여하고 있다. 처음 시작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그들의 활동을 담은 카탈로그를 출간해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역사 깊은 디자인・예술협회, 'FAD'

 

FAD (출처: Materfad)

 

 

온라인 공간에 '터미널 B'가 있다면 오프라인 공간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useu D'Art Contemporani de Bacelona) 앞에는 'FAD(Foment de les Arts i del Disseny: 디자인・예술협회)'가 있다. 'FAD'는 ‘디자인과 예술’ 분야에 뜻있는 이들이 만든 협회로 1903년에 시작해 무려 100년이 넘었다. 'FAD'에는 1,5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으며,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기업과 연결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한국디자인진흥원(KIDP)'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보다 역사가 깊으며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고 활성화된 곳이다. 바르셀로나 시가 운영하지만 'FAD'는 정부기관이 아닌 협회의 성격이 강한데 이들의 다양한 활동은 여느 정부 디자인 기관 못지않게 활발하고 혁신적이다. 특히 젊은 디자이너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신인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디자인평론가, '훌리 카페야(Juli Capella)'

 

디자인평론가이자 건축가인 훌리 카페야(Juli Capella)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호텔 옴(Hotel Omm) (출처: Flickr)

 

 

스페인 디자인계가 풍성해진 것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많은 신인을 발굴하고 키워낸 '훌리 카페야'이다. 훌리 카페야는 디자인평론가이자 건축가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스페인 디자인을 주제로 수많은 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그 중 '스페인 산업 디자인'전, '가우디'전, '스페인 디자인 300%'전을 통해서 본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훌리 카페야는 앞서 소개한 '터미널 B', 'FAD'와 더불어 디자이너들을 지원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단체가 아닌 개인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인이 보유한 훌륭한 무형자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도시 바르셀로나. 하비에르 마리스칼과 같은 유명한 거장들과 프로젝트 그룹, 신진디자이너들이 도시의 디자인 인프라와 정책 속에서 자유로이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바르셀로나 디자인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 풍성함을 즐기는 것이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것 못지않게 큰 즐거움임을 느낀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는 아직 활발히 소개되고 있지 않아 다소 낯선 바르셀로나의 디자인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리스칼 전에 방문하여 바르셀로나의 디자인 세계의 풍성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Write. 김한

 

7321디자인 대표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로 감성적인 생활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리스칼의 이야기를 하려고 머릿속에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꽃이 먼저 피어난다. 마리스칼은 그의 그림 속에 보이는 캐릭터와 닮았다. 장난기 가득한 눈매, 볼 가득 머금은 미소 그리고 언제라도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입가도 닮았다. 아이처럼 어디서라도 자연스레 손발을 흔들며 걷는 모습도 비슷하다. 환갑을 훌쩍 넘은 디자이너의 얼굴에서 늘 아이들의 표정을 만나는 것도 기분 좋은 경험이다. 그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인다.

                                                                                                                                                                                        

그는 일상 대화 중에 항상 농담을 섞어 그를 처음 만나거나 인터뷰를 하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일이든 일상이든 ‘기쁨’이 존재하지 않는 그의 시간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기쁨’을 믿는다. 항상 웃으며 일하고 즐기지만 실수도 하고 그것을 통해 궁금해하며 배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마리스칼은 그의 예술, 디자인과 삶의 철학을 ‘기쁨과 행복’에서 찾는다. 그의 넘치는 웃음과 작품 속에 녹아 든 유머만큼이나 그다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마리스칼의 대화 연장선, ‘코믹’

 

LOS GARRIRIS. SINSENTIDO, 1974년부터 그린 LOS GARRIS (출처: Estudio Mariscal)

 

 

청년시절의 마리스칼은 코믹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모든 대화를 그림으로 그려내던 그이기에 스토리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코믹은 그의 대화방법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의 코믹에 영향을 받았고,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을 위시한 팝 아트(pop art)와 피카소(Pablo Picasso)와 같은 큐비즘(Cubism) 작가들의 그림을 보며 꿈을 키웠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가 일찍이 발달한 유럽에서 그는 전통적 기술과 오랜 관습을 따르지 않고, 조각도를 자유롭게 휘둘러 만든 듯한 혹은 낙서하듯 그린 글자체를 사용하였다. 그의 이런 선진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은 디자인 분야로 넘어와서도 지속되었다.

 

 

신선하고 발랄한 캐릭터 코비와 트윕시

 

2012년 <코비>의 20번째 생일을 기념한 마리스칼의 드로잉, <트윕시>와 마리스칼(출처: Mariscal Studio Facebook, 왼쪽, 오른쪽)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개최된 1992년 즈음,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자유분방한 디자인 정신과 낙서 같은 그래픽을 처음 접했다. 정형화되고 틀에 짜인 기존의 올림픽 마스코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마리스칼은 ‘코비’라 불리는 이 마스코트를 세상에 보란 듯이 내놓았고, 그의 명성은 순간 세계 디자인계를 흔들었다. <코비>가 소개된 당시에는 아이 그림 같고 성의 없이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코비>의 신선하고 발랄함에 금세 친근감을 느꼈고 사랑에 빠졌다. <코비>는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 가장 경제적인 가치를 지녔고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마스코트라고 하니 그 영향력 또한 대단한 것이다. <코비>는 마리스칼이란 작가가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만든 캐릭터이지만 우리에게 그의 세계를 살짝 맛보게 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코믹작가에서 캐릭터,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세상에 알려진 마리스칼은 멈추는 법이 없다. 마치 마법의 구두를 신은 후 한번 추기 시작한 춤을 멈출 수 없는 사람처럼, 신명이 나서 더욱 그만의 독특함과 유머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21세기에 들어선 마리스칼은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주목 받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는 하노버세계박람회(Expo Universal de Hanover) 마스코트 <트윕시>를 디자인했다. <트윕시> 역시 <코비>와 마찬가지로 친근하고 익살스럽다.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추잉껌처럼 늘어나는 <트윕시>의 한쪽 팔의 자유로운 형태는 기존의 마스코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애니메이션 장르에 도전

 

<치코와 리타>의 한 장면 (출처: DAUM 영화)

 

 

그의 열정적인 관심과 호기심은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 멈추지 않고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 다다른다. 재즈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자 친구인 페르난도 투르에바(Fernando Trueba)와 의기투합해 처음 만든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는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가 그린 애니메이션이 코믹을 그리는 방식을 따랐다는 점이다. 검정색 아웃 라인을 지우지 않고 고스란히 살렸다.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었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이 코믹을 그린 작가였다는 뿌리를 새삼 상기시켜준다. 스페인 디자인계 거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경력과 경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마리스칼이 디자인하는 그래픽, 제품, 가구 그리고 공간들은 감정이 담긴 표정 있는 선과 재치로 플러스 에너지를 만들어 내었다. 그가 디자인하는 이미지와 형태는 시선을 집중시킬 정도로 독특했으며 유머와 아이러니를 더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풍부하고 따뜻한 색상과 더불어 그의 오브제들은 기쁨이란 감정을 전달한다. 마리스칼은 어떤 사물의 본질을 잊지 않으면서 또 다른 의미가 담긴 사물로 변형시키고 다른 상황을 찾아내는 놀이 같은 방식으로 일하며 자유를 만끽한다.

 

 

그림을 통해 소통하는 마리스칼

 

 

 

 

다시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면, 지중해의 어느 섬 한 모퉁이에서 편안한 등나무 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태블릿에 풍경을 그려나가고 있거나, 감미로운 라틴재즈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하바나의 노천카페에 앉아 빠르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혹은 바르셀로나의 어느 바에 앉아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풍경이 떠오른다. 최근 마리스칼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태블릿에 기록하듯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홈페이지(http://www.mariscal.com/)나 페이스북(www.facebook.com/pages/Mariscal-Studio/58639018711)에 업데이트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그림을 쉽게 접하고 나눌 수 있다. 우리도 마치 그의 곁에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보거나 비 내리는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잔 하는 듯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 그의 희망대로 그림을 통해 언제든 기쁨의 순간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운이 좋다. 마리스칼의 세상을 엿볼 수 있는 대규모의 전시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뉴욕, 런던, 상파울루, 파리, 도쿄 같은 도시를 거쳐 마침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그 환상적이고 화려한 막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관객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되고 만들어진 세상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은 그의 예술적 감성이 담긴 디자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다.

 

 


 

Writer. 유혜영

 

在 스페인 프리랜서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

스페인 신문 El Punto AVUI 전속 일러스트 작가

『스페인 디자인 여행』, 『스페인 타파스 사파리』 저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겨울 속에 봄 씨앗이 뿌려진 듯한 어느 날 오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그’를 만났다. 평범한 네 컷 만화가로 시작해 다양한 작업으로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디자이너가 된 스페인의 하비에르 마리스칼. 그 동안 그의 그림 몇 점만을 보고 평범한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이번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인생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마리스칼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과제를 충실히, 그리고 유쾌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마리스칼은 30대까지 난독증을 앓았다. 하지만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는 난독증 속에서 그림을 언어로 사용하여 소통하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 지역의 낙천적인 분위기와 자연이 보여주는 강렬한 빛과 색감, 그리고 문화예술을 즐기고 존중하는 환경은 난독증을 앓던 그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융합적인 디자인의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융합형 디자이너의 대표주자 마리스칼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엘리사바 디자인학교(Elisava Superior Design School)를 다니면서부터 많은 예술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BAR CEL ONA> 포스터 디자인부터 1980년대 가구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바르셀로나 디자인의 상징이 되었다. 1989년 ‘마리스칼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다양한 로고,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고, 2010년에는 <치코와 리타>라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태블릿에 직접 그림을 그리며 멈추지 않는 융합형 디자이너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방위적인 작업으로 스페인에서 사랑받던 마리스칼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인 <코비>를 탄생시키면서부터다. 행사용 캐릭터는 그 행사가 종료되면 잊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코비>는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얼마나 생명력 넘치고 가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아트 플레이어의 놀이터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은 국내에 단편적인 몇몇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던 마리스칼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준 기회였다. 많은 디자인 전시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만한 전시다. 입구에서부터 강렬한 색감과 캐릭터 <아트 플레이어>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들어가는 구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시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진짜’ 흔적이다. 보통 대다수의 전시는 실크스크린 등 디지털 프린팅을 통해 공간을 디스플레이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한국을 직접 찾은 마리스칼이 디스플레이를 지휘하고 곳곳에 그의 손으로 직접 드로잉을 했다.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자유로운 선과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 체계를 보여준 그가 전시 공간을 직접 오가며 남긴 흔적들, 그 속에서 느껴지는 60대의 나이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그의 열정은 우리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전시장을 구석구석 돌다 보면 한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고 작품 활동을 선보일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특히 작은 아이가 고개를 숙여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작은 집 <빌라 훌리아>와 전시장 구석에 위치한 아이들만의 전용 통로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출구 쪽에 자리한 체험공간 '해피엔드'에서는 디자인에 관심 있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람객까지 마리스칼에 푹 빠져 '아트 플레이어' 캐릭터에 색칠하고 붙이기를 즐길 수 있다.

 


즐겁게, 사고의 경계를 지워라!

 

 

 

마리스칼의 작품 중에는 <해피월드>라는 제목의 지구본이 있다. 그 지구본에는 경계를 상징하는 나라 이름이 없다. 바다와 육지, 강과 산들만 표현되어 있다. 나라나 영역을 표시한 흔적이 없는 <해피월드>. 각 나라의 선과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기존의 지구본과 달리, 마리스칼의 <해피월드>는 경계를 만들지 않고 장르를 넘나드는 그만의 철학이 함축적으로 녹아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면 여러 개의 <해피월드> 지구본들 중에는 누군가가 ‘한국’이라고 한글로 낙서해 놓은 듯한 지구본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마리스칼이 한국에 머물며 전시 설치를 둘러보던 중 이번 전시의 재미를 위해서 ‘한국’이라는 글자를 직접 그려 넣었다고 한다. 사고의 깊이와 더불어 유머도 놓치지 않는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마리스칼이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에는 스페인 문화의 개방적인 성격도 큰 몫을 했다. 아라비아 문화와 서유럽 문화가 혼재하는 스페인 문화는 경계를 지우고 다양함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경직된 사고 속에서는 자유로운 예술적 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을 것이다.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의 가능성과 자유로움을 수용할 수 있는 그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폭넓음이 더욱 중요하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즐거운 놀이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에서 영역의 구분이 없는 디자이너의 대표주자 하비에르 마리스칼을 꼭 만나보길 추천한다.

 

 

 

 


 

Writer. 김한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로 감성적인 생활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베보 발데스(Bebo Valdes) (출처: DAUM 영화)

 

 

2013년 3월 스웨덴에서 쿠바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사망했다. 스톡홀름에서 40여 년을 살았던 그의 나이는 94세.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조용한 죽음이었지만 이 소식은 전 세계 음악계에 인상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이름은 베보 발데스(Bebo Valdes). 그는 유명한 쿠바의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Chucho Valdes)의 아버지이자 쿠바 트로피카나 클럽(Tropicana Club)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또한 최고의 작곡가, 편곡자 그리고 바탕가(Batanga) 리듬의 창시자다.



베보 발데스, 페르난도 트루에바 그리고 마리스칼의 만남

 

베보 발데스는 1940~1950년대 쿠바음악 전성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였고, 현대의 전설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던 인물이었다. 당시 쿠바에서 가장 유명했던 트로피카나 클럽은 쿠바음악과 재즈가 만나 '아프로-쿠반(Afro Cuban)'이라 불리는 독특한 리듬이 탄생한 곳인데, 그곳에서 베보 발데스는 오케스트라 사보르 디 쿠바(Sabor de Cuba)를 지휘하며 작ㆍ편곡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 스웨덴 공연 중 어느 여성과 사랑에 빠지며 홀연히 음악계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가 다시 음악계에 복귀한 것은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1994년. <Bebo Rides Again>이란 앨범을 발표한 그는 세상의 관심을 받으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2000년에는 그가 활동하던 쿠바 재즈 음악계의 전성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칼레 54(Calle 54)>가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스페인 출신의 페르난도 트루에바(Fernando Trueba)였다.

 

이 때의 인연으로 페르난도 트루에바는 2010년 <치코와 리타>를 연출하게 되었고, <칼레 54>의 포스터 작업에 참여했던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마리스칼이 디자인 한 <칼레 54(Calle 54)>의 포스터 (출처: Estudio Mariscal)

 

 

<치코와 리타>는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이라곤 만들어본 적도 없던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와, 역시 한 번도 영화 제작에 참여해본 적이 없던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이 만나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발휘한 작품이다. <치코와 리타>는 1940~1950년대 트로피카나 클럽을 대표하는 스타 가수였던 리타 몬테너(Rita Montaner)를 모델로 하는 '리타'와 베보 발데스가 모델인 '치코'의 관능적인 러브스토리가 핵심이다. 주인공 치코의 피아노 연주 장면을 베보 발데스의 실제 연주와 겹쳐 그리는 식으로 제작된 방식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실제로 살아 숨 쉬며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은 생동감을 선사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관찰력과 애정을 통해 거장 피아니스트의 섬세한 손놀림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예술로 재탄생 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베보 발데스가 참여한 사운드트랙은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완성도를 부여하는데, 영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 음악은 여러 가지로 베보 발데스를 좀 더 대중적인 이름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요컨대 <칼레 54>가 공개된 2000년부터 <치코와 리타>가 발표된 2010년은 베보 발데스에게 제2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치코와 베보 발데스 (출처: DAUM 영화, 왼쪽, 오른쪽)

 

 

드라마틱한 베보 발데스의 삶

 

<칼레 54>가 개봉된 후 그는 40여 년 만에 대중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 2002년에 발표한 <El Arte del Sabor>과 2006년에 발표한 <Bebo de Cuba> 앨범으로 각각 그래미 베스트 트래디셔널 앨범과 베스트 라틴 재즈 앨범을 수상했고, 이는 베보 발데스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알리는데 기여했다. 이 두 장의 앨범에서 그는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이며 그가 창시한 바탕가 리듬을 과시했는데, 바탕가는 쿠바 출신의 음악가 페레스 프라도(Pérez Prado)가 1943년 무렵 만들어낸 맘보를 좀 더 복잡하게 발전시킨 리듬이다. 1950년대에 냇 킹 콜(Nat 'King' Cole) 등과 녹음하며 쿠바와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던 그의 저력이 40여 년이 지난 1990년대에 부활했던 것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재기라고 할 수 있다.

 

 

Bebo de Cuba (출처: coveralia

 

 

그러면 그 동안 베보 발데스는 스웨덴에서 무엇을 했을까. 어째서 이 사내는 공연을 하러 간 것뿐인 스웨덴에 정착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일까.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1959년 쿠바혁명이 발생했을 때 발데스는 부인과 다섯 자녀를 남겨두고 멕시코로 피신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혁명은 예술가에게 처자식을 두고 고국을 등지게 할 만큼 가혹했다. 다른 것보다 당시 쿠바 혁명군이 재즈를 부르주아의 예술양식으로 규정했기 때문인데, 이 부분은 <치코와 리타>에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치코가 혁명 이후에 평생을 구두닦이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멕시코로 떠난 베보 발데스는 미국을 거쳐 스웨덴의 스톡홀롬에 정착했고 그 후로 한 여성과 결혼해 새 가정을 꾸리며 은둔하다시피 했다. 물론 자의적이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연인과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혁명으로 뒤집어진 조국에 머무는 것만큼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가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고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은 과정이야말로 인간극장 같은 극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 (출처: Flickr),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출처: DAUM 뮤직)

 

 

베보 발데스는 2007년에 <Live At The Village Vanguard>란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2005년 11월에 그가 스페인의 베이시스트 하비에르 콜리나(Javier Colina)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에서 13일간 선보였던 공연 실황을 모은 앨범이다. 빌리지 뱅가드는 빌 에반스(Bill Evans)의 <Waltz for Debby>의 산실이자 뉴욕 라이브 재즈 바의 대명사로, 여기서 녹음한 라이브 앨범은 2000년대 들어 신들린 듯 다양한 컨셉트의 작업을 성사시키던 그가 유일하게 녹음한 공연 실황이자 생전의 그가 남긴 마지막 정규 앨범이기도 하다. 건조할 만큼 투박한 피아노 연주로 고전을 연주하는 그의 스타일이 거의 전부 담겨 있다고 봐도 좋은데, 스튜디오 앨범과는 다른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그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어떤 감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분이다. 이를테면 오랜 시간 주변을 배회하다가 극적으로 음악 안으로 뛰어 들어온 피아노 장인에 대한 존중과 그가 살아온 오랜 삶에 대한 존경이다. 과거를 위해 자신의 유산을 남기는 사람들에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명백하게, 베보 발데스도 그중 하나다.

 

 


 

Writer.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에디터. [청춘의 사운드] 저자

  여러 매체에 음악을 비롯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허준 2015.04.12 22:52 신고

    참고그림중 애니의 저 모자쓴 피아니스트는 애니매이션에서 다른 연주자일뿐이예요. 만화를 보셨다면 저렇게 안 쓰셨을텐데 보지 않으시고 작성하셨나봐요. 저사람은 잠깐 뉴욕에서만 나온 사람이랇니다. 베보의 직접적인 인물은 치코라는 인물이예요. 영화를 최소한 보시고 작성하셔야지요.

  2. addr | edit/del | reply 엘리 2015.10.22 12:12 신고

    윗 분 말씀대로 사진의 피아니스트는 델로니어스 몽크 입니다. 영화에서 치코가 뉴욕의 재즈 클럽에 갔을 때 차노 포소와 함께 연주중이던 장면이죠. 베보는 포스터에도 나오는 치코가 그 모델입니다.

    • addr | edit/del Favicon of http://superseries.kr 슈퍼시리즈 2015.10.23 16:20 신고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수정사항 반영하였습니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블로그에 관심을 갖고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대카드 패션위크